미-EU 무역전쟁 가시화... 유럽연합 '반강압 수단' 발동 검토

DW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초까지 모든 EU 상품에 20%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관세를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고 공언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에 대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경제적 자해 행위"라며 강력 대응을 준비 중이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집행위원회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새로운 관세가 부과되면 유럽 제품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관세는 미국이 개별 EU 회원국을 대상으로 할지, 아니면 EU 전체를 겨냥할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조치가 이미 부과된 EU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와 최근 시행된 유럽 자동차 부문에 대한 별도 관세에 추가되는 것이다. 특히 EU 자동차 산업, 그중에서도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미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 EU의 '반강압적 무역 대응책'과 빅테크 규제 카드
EU는 자국민과 소비자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검토 중이다. 무역 측면에서 EU는 2023년 미국과의 교역에서 1570억 유로(약 250조 원)의 상품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서비스 부문에서는 미국이 1090억 유로(약 173조 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교역 구조를 고려해 EU는 지금까지의 상징적 보복 관세(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데님 청바지 등)에서 벗어나 미국 서비스 부문을 겨냥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여기에는 애플과 구글 같은 기업들의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나 운영체제 업데이트 비용 청구를 제한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위성 네트워크가 유럽 정부 계약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가장 강력한 대응책으로 주목받는 것은 '반강압 수단(Anti-Coercion Instrument, ACI)'이다. 이 제도는 2023년 12월 EU가 중국의 리투아니아 수입 차단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무역 방어 메커니즘으로, 외국의 부당한 경제적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EU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경제적 강압'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이 수단을 통해 다각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
ACI는 EU에 상당히 광범위한 대응 권한을 부여한다. 구체적으로는 관세 부과, 수입 제한, 공공조달 시장 접근 차단, 서비스 거래 제한, 투자 규제, 지적재산권 보호 제한 등 다양한 조치를 포함한다. 특히 EU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미국 은행의 영업을 제한하거나, 미국 기업의 특허를 일시 취소하거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익 접근을 제한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롬 전 EU 무역 집행위원과 이그나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전 EU-미국 무역협상 대표 등 유럽 무역 분야 저명인사들은 ACI의 전략적 활용을 지지하고 있다.
◇ 빅테크 제재와 정치적 복잡성
또한, EU는 디지털서비스법(DSA)과 디지털시장법(DMA)을 활용해 미국 기술 기업들에 대한 규제도 강화할 수 있다. 허위 정보를 즉시 삭제하지 않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거나, X(구 트위터)에 대한 광고 판매 금지, 유료 구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특히 ACI는 "정부와 연결된 자연인 또는 법인"을 대상으로 할 수 있어 트럼프와 가까운 인물인 일론 머스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U는 이미 유럽 선거 기간 동안 머스크의 플랫폼 X에서 극우 콘텐츠 홍보를 조사하고 있어 이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EU 내부 정치 지형도 복잡하다. 모든 보복 조치는 자격을 갖춘 대다수 EU 국가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미국의 잠재적 보복으로부터 와인 부문을 보호하기 위해 버번 위스키에 대한 관세 부과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 사례가 있다.
한편, 많은 경제학자와 무역 전문가들은 미국 기술 기업을 겨냥한 EU 조치가 양측 간 긴장을 크게 고조시키고 유럽 시민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통적 동맹 관계에 있는 두 경제 대국 간의 무역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세계 경제가 주목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