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제도 개혁으로 위험자산 투자 확대...자산운용사들은 방위산업 ETF 경쟁 가속화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30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연금 개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불안이 유럽 방위산업 투자를 가속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연금 개혁으로 위험자산 투자 확대
네덜란드 최대 자산운용사 APG 애셋 매너지먼트(Asset Management)의 로날드 뷔이스터 최고경영자(CE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더 매력적인 가치와 실제 영향을 기대하기 때문에 예상되는 1000억 유로의 가장 큰 부분이 유럽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네덜란드 펀드가 유럽 대륙의 방위 이니셔티브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으며, APG는 이미 방위 산업에 기여하는 회사에 약 20억 유로(3조 1800억 원)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뷔이스터 CEO의 발언은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작년에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 매년 8000억 유로(약 1274조 원)의 투자를 늘릴 것을 EU에 촉구한 상황에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각국 정부가 유럽의 안보에 더 큰 부담을 짊어질 것을 촉구했다.
네덜란드는 2023년 직업 연금 시스템을 개혁해 기존의 확정급여형(DB) 제도에서 고정 퇴직 소득을 보장하지 않는 모델로 전환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전환은 2025년에서 2028년 사이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뷔이스터 CEO는 "과거에는 민간 투자와 신용 위험에 대한 불이익이 있었지만 지금은 줄어들고 있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 예산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개혁을 통해 투자자들이 "약간 더 높은 위험 프로필"을 가진 자산을 고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으며, 위험자산이 "5% 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사모 자산과 신용 스프레드에 대한 할당을 높일 것으로 전망했다.
네덜란드 최대 연금 운용사인 ABP는 2027년까지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할 예정이며, 5440억 유로(약 867조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ABP 자산의 4분의 1 이상이 사모 시장에 투자되어 있으며, 사모펀드 익스포저의 약 40%는 유럽에서 이루어졌고, 전 세계 사모펀드 할당량의 57%를 유럽에서 차지했다.
뷔이스터는 이러한 지리적 균형이 새로운 시스템 하에서도 계속될 수 있으며, 사적 자산과 신용으로의 전환은 "향후 5년 동안" "매우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자산운용사, 방위산업 ETF 경쟁 가속화
FT가 지난 27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인 아문디(Amundi)는 유럽 대륙 전역의 군사비 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며 방위 산업체와 연계된 유럽 ETF의 여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복수의 관계자가 전했다. 1140억 달러(약 167조원) 규모의 미국 펀드 매니저인 반에크(VanEck)도 유사한 투자 수단의 출시를 모색하고 있다.
데이터 제공업체 모닝스타(Morningstar)의 애널리스트 케네스 라몬트는 "이러한 상품을 구축하기 위한 엄청난 경쟁이 있다"며 자산운용사들이 "내가 본 것보다 더 빨리 상품을 전환하고 있다"고 FT에 말했다.
미국 회사인 위즈덤트리(WisdomTree)는 이달 초 독일, 이탈리아, 영국의 증권거래소에 유럽 방위 산업체에만 초점을 맞춘 최초의 ETF를 상장했다. 이 펀드는 그 이후로 5억 7500만 달러(약 8502억 원) 이상의 자금 유입을 유치했으며 이미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플랫폼 테마 펀드가 되었다.
위즈덤트리의 유럽 연구 책임자인 피에르 드브루는 "매우, 매우 큰 관심이 있다"며 "연기금뿐만 아니라 자산 관리자, 개인 투자자들도 손을 내밀고 있으며, 전 세계의 고객을 만나고 있다"고 FT에 전했다.
유럽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한 후 유럽 각국이 국내 무기 생산을 늘리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투자자들이 소비 붐을 예상함에 따라 스톡스 유럽 토탈 마켓 항공우주 및 방위(Stoxx Europe Total Market Aerospace & Defense) 지수는 올해 34% 상승해 스톡스 유럽 600을 크게 앞질렀다.
번스타인의 주식 애널리스트 알렉산더 피터크는 "유럽 시장에서 이와 같은 변화는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볼 수 없으며, 최근 몇 주 동안 돈이 어디로 갔는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FT에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의 오랜 실적 저조가 "모든 투자자들이 파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프레임워크에 따라 투자하는 펀드들이 독일의 라인메탈과 이탈리아의 그룹 레오나르도와 같은 방위 기업을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해왔으나, 최근 일부 연금 투자자들은 무기 제조업체에 대한 투자가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데 중요해졌다고 주장하며 국방 제외 조항을 완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AkademikerPension)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안데르스 쉘데도 다음 주 연례 총회에서 국방 정책이 논의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지난 27일 FT에 말했다. 그는 "이사회가 우리의 입장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의 배제 정책이 "매우 엄격하다"고 덧붙였다.
런던에 본사를 둔 HANetf의 리서치 책임자인 톰 베일리는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 방위 기업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 더 부드러워졌다"며 "이전에는 방위 산업체를 추가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곳에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FT에 설명했다.
영국 최대의 은퇴 및 저축 제공업체인 피닉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마이크 에이킨스는 "역사적으로 투자자들은 군사 부문에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삐걱거렸다"며 "이제 장기 자산 소유자들은 국방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