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75% "출국 고려"... 해외 대학들 미국 인재 영입 경쟁 본격화
대학 본연의 연구기능과 국가 경제 발전 기여 축소 경고 비등
대학 본연의 연구기능과 국가 경제 발전 기여 축소 경고 비등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네이처(Nature), 그리고 미국 진보 성향 잡지 뉴 리퍼블릭 보도를 종합하면, 학문의 자유와 연구 지원 축소 등 학계에 대한 압박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대학의 중추적 가치와 역할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FT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조지아 대학의 경영학 교수인 팀 퀴글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스위스 로잔의 IMD 비즈니스 스쿨로 자리를 옮겼다. 퀴글리 교수는 "모든 안전장치가 사라졌고, 미국을 떠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명확해졌다"며 "10살 딸이 있는데, 학교 총기 사고보다 테슬라 차량 파손에 더 관심을 갖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예일대 철학과 교수 제이슨 스탠리는 컬럼비아 대학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수용한 후 캐나다 토론토 대학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스탠리 교수는 "학문의 자유와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는 가치를 믿는다"며 "독재적 정권에 맞서기 위해서는 숨어서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일대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 마시 쇼어와 함께 토론토 대학으로 이직할 예정이다.
네이처가 발표한 1,600명 이상의 미국 과학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5%가 출국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690명의 응답자 중에서는 그 비율이 80%로 더 높게 나타났다. 또한, 미국 내 박사후 연구원 293명을 대상으로 한 1월과 2월의 조사에서는 78%가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거나 연구가 지연되었다고 응답했다.
컬럼비아 대학의 한 과학자는 FT에 "모든 것이 멈춰 있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안전에 대한 걱정, 여행 가능 여부에 대한 걱정 등 급진적인 불확실성이 있다"며 "최근 유럽에서 열린 두 차례의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곳의 동료들은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의 요청에 포위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해외 대학들, 미국 인재 유치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 발표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와 유럽의 대학들은 미국 학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토론토 대학의 뭉크 글로벌 문제 및 공공 정책 대학원 창립 이사인 제니스 스타인은 테머티와 마이할 가족의 기부 덕분에 예일대 교수 3명을 고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스타인 이사는 "우리가 이 도전에 맞서려면 멀리 내다보는 자선가와 재단이 대학을 돕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엑상 마르세유 대학은 최소 15명의 미국 과학자들에게 1,500만 유로(약 239억 원)을 지원하는 '과학을 위한 안전한 장소'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과학적 망명을 고려하고 있다"는 미국 학자들로부터 수십 건의 지원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브뤼셀 자유 대학교는 "위협을 받고 있는 뛰어난 연구자들"을 위한 웹사이트와 연락처를 개설했다. 얀 단카에르트 총장은 "미국 대학과 학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간섭의 가장 큰 희생자"라고 말했다.
스웨덴 연구위원회 의장인 카타리나 비엘케는 "미국 연구자들과 다른 나라의 연구자들에게" 추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논의가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전했다. 심지어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으로 큰 타격을 입은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경제대학 총장도 소셜미디어에 "불확실하거나 위협을 느끼는 학자라면,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게 되어 기쁘다"라는 초대장을 올렸다.
◇ 국가 경쟁력의 핵심 대학, 트럼프 정책으로 존립 위기 직면
이러한 학자들의 이탈은 미국 경제와 과학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대학 시스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진보 성향 잡지인 뉴 리퍼블릭은 지난달 27일 보도에서 "미국의 대학들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다. 이들은 혁신, 번영, 국가 안보, 사회적 이동성을 이끈다"고 강조했다.
뉴 리퍼블릭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생물의학 연구 자금 삭감, 연구 기관 폐지, 학생 펠 그랜트 축소 위협, 여행 금지, 유학생 비자 처리 지연, 캠퍼스 내 표현의 자유 공격, 기부금에 대한 세금 대폭 인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 대학을 공격하고 있다. 특히 컬럼비아 대학에 4억 달러(약 5900억 원)의 연방 자금을 삭감하겠다는 위협을 통해 대학이 일련의 양보를 하도록 압박했다고 전했다.
"이것은 단지 아이비리그에 대한 전쟁이 아니다. 모든 고등교육에 대한 전쟁"이라고 뉴 리퍼블릭은 경고했다. 그럼에도 미국 대학들의 국가 경제 기여도는 여전히 높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듀크대학이 두 번째 민간 고용주이며, 아이오와에서도 아이오와 대학이 두 번째 고용주다. 켄터키, 네브래스카 등의 주에서는 대학 병원 시스템이 최대 고용주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은 펜실베이니아 남동부 경제에 370억 달러(약 54조 5800억 원)를 기여하고, 필라델피아에 5억 4700만 달러(약 8069억 원)의 세금 수입을 제공한다.
대학교육의 가치 역시 높다. 뉴 리퍼블릭은 "학사 학위 소지자의 중간 소득은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진 사람들보다 연간 4만 500달러(약 5975만 원) 또는 86% 더 높고, 평생 소득은 120만 달러(약 17억 6900만 원) 더 높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학의 과학적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 이후 인간 게놈 완전 매핑을 포함한 CRISPR, 유전자 치료, 암 치료를 위한 CAR-T, mRNA 백신, GLP-1 약물 등 5개 주요 생물의학 발전 중 모든 성과가 미국 대학에서 이루어졌다(GLP-1은 미국과 덴마크 공동). 이러한 학술적 연구는 미국이 세계 10대 제약 및 생명공학 회사 중 6개를 보유하게 된 주요 이유라고 뉴 리퍼블릭은 설명했다.
또한, 미국 대학은 매년 110만 명 이상의 외국 학생을 유치하며, 이들은 미국 경제에 430억 달러(약 63조 원) 이상의 외화를 기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8번째로 큰 '수출' 산업이며, 옥수수, 밀, 콩 등 모든 곡물 수출보다 규모가 크다. 미국에서 공부한 외국 학생들은 10억 달러 이상 가치를 지닌 582개 스타트업 회사 중 55%를 설립했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학 시스템에 대한 공격은 결국 미국 자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뉴 리퍼블릭은 경고했다. "만약 고등교육이 흔들린다면,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과 기업가들이 그들의 연구와 회사를 다른 곳으로 가져갈 것이고, 이는 미국에서 고임금 일자리를 빼앗게 될 것이다. 경제를 활성화하는 자본을 제공하는 투자자들도 그들을 따를 것이다. 만약 미국이 고등교육 분야에서 세계 리더로서의 위치를 잃는다면, 국내적 결과는 광범위할 것이며 대학 졸업자나 엘리트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뉴 리퍼블릭은 경고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