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환경단체 "재생 에너지 전환" 맞서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원전 건설 계획 속 안전성 우려와 재생 에너지 활용 주장 공존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원전 건설 계획 속 안전성 우려와 재생 에너지 활용 주장 공존

필리핀은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 주도로 원자력 발전을 확대할 계획이다. 라파엘 로틸라 필리핀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2월 "필리핀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책임감 있는 원자력 에너지 프로그램을 위한 길을 닦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는 2032년 1,200메가와트(MW) 용량을 시작으로 205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로 4,800MW를 공급할 계획이다.
런던 소재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분석에 따르면, 필리핀은 2023년 동남아시아에서 석탄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로,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안으로 원자력을 선택했다. 원자력 발전은 운영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나 기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약 64km 떨어진 바탄 지방에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된 바 있다. 1970년대에 지어진 이 시설은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의 몰락과 함께 가동이 중단되었다. 같은 해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최소 30명이 사망하고 북반구 대부분에 방사능 낙진이 발생하면서 바탄 원전은 결국 가동되지 못하고 폐허가 되었다.
◇ 환경단체 "원전보다 재생에너지 활용해야"... 소형 모듈형 원자로 대안 제시도
환경단체들은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과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원자력 및 석탄 없는 바탄 운동의 데릭 케이브는 DW와의 인터뷰에서 "원자력은 채굴과 운송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유한한 자원인 우라늄을 필요로 한다"며 "'깔끔한 내러티브'는 거짓이며 원자력 에너지는 기분 전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케이브는 "정부의 정치적 의지 부족과 예산 배분 문제가 재생 에너지를 완전히 활용하는 데 방해가 되는 주요 요인"이라며 태양열, 수력, 풍력 발전 등 재생 가능 에너지가 태양과 물, 바람이 풍부한 군도 국가에 더 적합한 솔루션이라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도 향후 15년간 원자력을 포함한 '청정' 에너지원에서 전력의 75%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발전소 건설은 2032년에 시작될 예정이며 원자력 규제 프레임워크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인도네시아 환경법센터의 선임 전략가 그리타 아닌다리니는 DW와의 인터뷰에서 "지진과 자연재해에 취약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같은 국가에서 건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원자력 발전소에 집중하는 것은 실수"라며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와 더 안전한 친환경 옵션이 있는데 고위험 활동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은 거의 20년 동안 원자력을 고려해왔으며 2030년까지 남동부 닌투안성에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산호세 대학 교수이자 베트남 정부 핵 정책 고문인 투이 레는 DW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계획은 너무 야심차고 실패할 것"이라며 대안으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투이 레는 "SMR 또는 마이크로 리액터부터 시작하여 단계별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양기술대학교(NTU)의 앨빈 츄는 DW와의 인터뷰에서 "이 지역은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한 운영을 규제한 경험이 없다"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동남아시아 대중들이 원자력 에너지 개발에 낮은 지지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바탄의 반핵 활동가 케이브는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화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며 "발전소에 문제가 있다면,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DW 보도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지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원자력 발전 추진과 재생 에너지 확대 사이에서 각국 정부와 환경단체 간 견해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 우려와 대중의 낮은 지지도는 이 지역 국가들의 원전 계획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정부와 환경단체 간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합의점 도출이 향후 과제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