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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 대기업 '남성 독점' 여전...DEI 쇠퇴에 여성 임원 비율 20%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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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 대기업 '남성 독점' 여전...DEI 쇠퇴에 여성 임원 비율 20% 불과

애플·엔비디아 2명, 아마존·테슬라·넷플릭스는 여성 임원 전무
30대 IT 기업 80% 이상 남성 지배 여전
2024년 3월 3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모든 젠더 기반 폭력과 여성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에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24년 3월 3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모든 젠더 기반 폭력과 여성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에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트럼프 행정부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퇴조 기조 속에서 미국 주요 IT 기업들의 여성 경영진 비율이 여전히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남성적 에너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8(현지시간) 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Barron's)가 발표한 미국 IT 기업 경영진 다양성 조사에 따르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이 퇴조하는 가운데에도 기업 내 여성 경영진 비율이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런스는 S&P 500 지수에 포함된 시가총액 기준 상위 30IT 기업의 최근 위임장(proxy) 보고서를 2014년 자료와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중 여성은 단 4명에 불과했으며, 이 중 3명은 10년 이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최근 5년간 여성 CEO가 새롭게 선임된 사례는 전혀 없었다.

아리스타 네트워크(Arista Networks)의 제이쉬리 울랄(Jayshree Ullal) CEO는 이 그룹에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성 CEO, 2008년부터 이 네트워킹 장비 기업을 이끌고 있다. 아리스타는 20146월 기업공개(IPO)를 마쳤다.
메타 플랫폼즈(Meta Platforms)의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기업 문화가 "중성화됐다"DEI 정책의 결과를 비판했다. 다수의 기술 기업들이 메타처럼 연례 공시에서 다양성 관련 데이터를 삭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주요 IT 기업 여성 임원 현황, AMD 3명으로 최다

배런스가 분석한 각 기업의 '지명된 임원(Named Executive Officers· NEO)'은 일반적으로 기업 내 최고 보수를 받는 임원진을 의미한다. 이들 30개 기업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153명의 NEO 중 여성은 30명으로 19.6%에 그쳤다. 2014년에는 143명 중 11(8%)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개선됐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기업별로 살펴보면, 애플(Apple)과 엔비디아(NVDA)는 각각 2명의 여성 지명 임원을 두고 있으며, 아마존(Amazon), 테슬라(TSLA), 넷플릭스(Netflix)는 여성 임원이 전혀 없었다. AMDCEO를 포함해 3명의 여성 임원을 두고 있어 분석 대상 기업 중 가장 많은 여성 임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의 전 포용성 전략 부사장이었던 버나 마이어스(Verna Myers)는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분야에서 우리가 진전을 이뤄냈다는 것은 고무적이며, 이러한 진전은 문제를 드러내고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수많은 개입 없이는 달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페이스북(현 메타)은 다양성 보고서에서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수치가 보여준다. 훨씬 더 많은 일을"이라고 밝혔다. 애플의 팀 쿡(Tim Cook) CEO2014년 다양성 보고서에서 "이 페이지의 수치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썼다.

◇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DEI 정책 퇴조...기업들 다양성 관련 언급 삭제 추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0일 취임 다음 날 "불법적 차별 종식 및 능력 기반 기회 복원"이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민간 부문이 "불법적 DEI 차별과 특혜를 종식"하도록 장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많은 기업들이 연례 보고서에서 DEI 관련 언급을 삭제하거나 문구를 수정했다. 배런스에 따르면 분석 대상 30개 기업 중 19개사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10-K 보고서(미국 상장기업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중 11개사가 DEI 관련 언급을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과거에는 모든 30개 기업이 10-K 보고서에 DEI 이니셔티브를 보고했지만, 이제는 8개사만 DEI에 대한 언급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는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한 언급을 보고서에서 삭제했으며, 아마존(Amazon)2023년 보고서에서 "포용성과 다양성"을 언급했으나 2024년 보고서에서는 이 표현을 뺐다. 팔란티어(Palantir)IBM도 다양성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서비스나우(ServiceNow)20241월 제출한 연례 보고서에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이라는 제목의 섹션을 포함시켰으나, 1년 후에는 이 섹션을 "문화와 포용성"으로 변경했다.

메타 플랫폼즈(Meta Platforms)는 최근 연례 보고서에서 여성 및 소수 민족에 대한 대표성 목표를 종료했다고 밝혔으며, 목표 설정이 "인종이나 성별에 기반한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CEO를 둔 소수의 S&P 500 IT 기업 중 하나인 액센츄어(Accenture)도 다양성 보고서를 변경하고 있다. 배런스가 입수한 줄리 스위트(Julie Sweet) CEO의 내부 메모에 따르면, 액센츄어는 "2017년에 설정하고 2020년에 업데이트한 글로벌 직원 대표성 목표를 종료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을 위한 포용성과 소속감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더 포용성 방정식(The Inclusion Equation)'의 저자 세레나 황(Serena Huang)"행정명령이 영향을 미쳤고, 기업들은 정말로 '내가 이것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성명을 내는 것이 행정명령에 위배되는가?"라고 자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원 검색 및 컨설팅 회사 스탠턴 체이스(Stanton Chase)의 차티스 클라크(Chartise Clark) 전무는 "조직이 책임을 지지 않고, 데이터에 대한 지속적인 추적과 모니터링이 없다면, 단순히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거나 서서히 회귀할 것"이라고 배런스에 말했다.

한편, 배런스는 이번 분석을 위해 S&P 500 지수 내 시가총액 기준 30대 기술 기업을 조사했다. 분석 대상에서 통신사는 기술 기업의 성장 프로필과 맞지 않아 제외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