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관세 위협 현실화에 삼성전자, 베트남 생산 전략 수정 불가피
베트남 정부도 미국과의 협상에 사활… 수출 모델 전반의 위기감 고조
베트남 정부도 미국과의 협상에 사활… 수출 모델 전반의 위기감 고조

1989년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중국 외 지역으로 글로벌 제조 거점을 확대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시절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이후, 많은 경쟁 기업들이 베트남을 생산 기지로 삼았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선제적인 움직임은 베트남을 최대 외국인 투자국이자 수출국으로 만들었다. 리서치 기관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연간 전 세계에 판매하는 2억 2000만 대의 스마트폰 중 약 60%가 베트남에서 생산되며, 이 중 상당수는 미국 시장으로 향한다. 미국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 2위 시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베트남산 제품에 대해 최대 46%에 달하는 징벌적 관세 부과를 검토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삼성전자의 높은 의존도는 오히려 위험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고 재팬타임스가 지난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베트남 정부는 자국 수출 모델의 취약성을 드러낸 이 관세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의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이 90일간 관세율을 10%로 동결하면서 베트남과 삼성전자는 일단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관계자 12명 이상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오는 7월 미국의 고율 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삼성전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베트남은 우리 스마트폰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곳이지만, (초기) 관세율이 예상보다 훨씬 높아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 관세 폭탄 현실화 시나리오와 삼성의 고심
미국-베트남 양국이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한다 해도, 대미 무역 흑자가 약 1200억 달러(약 171조 1560억 원)에 달하는 베트남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목표로 하는 미국 행정부의 감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노이는 관세율이 더 낮아지지 않더라도 22%에서 28% 수준으로 인하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삼성전자와 협력사들은 생산 조정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에 정통한 4명의 관계자는 인도나 한국에서의 생산량 증대를 포함한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번 관세 위협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다만, 과거에 글로벌 공급망과 생산 거점을 활용해 미국의 관세에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베트남 외교부와 산업부 역시 관련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재팬타임스는 밝혔다.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애플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45%로 인상하면서 단기적으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애플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의 약 8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애플 또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 베트남 경제 전반의 위기감 확산
이번 관세 우려는 미중 갈등 속에서 생산 기지 다변화를 모색하던 기업들에게 인기 목적지였던 베트남 제조 환경에 드리운 또 다른 그림자다. 급격한 성장은 전력 공급 부족 문제로 이어졌고, 베트남 정부는 OECD 주도의 글로벌 기준에 맞춰 대규모 다국적 기업에 대한 실효세율을 인상했다. 일부 기업들은 기존 세금 감면 혜택 상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의 급증은 숙련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을 야기했다고 베트남에 진출한 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매우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압력이 지속될 경우 베트남의 투자 매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무라 증권은 보고서에서 "베트남의 손실은 인도의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 정부 관계자는 지난 4월 10일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이미 지난 2월 올해 말까지 1단계 합의를 완료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베트남은 이미 미국에 수입 증가 등의 양보를 했으며, '상호주의' 관세 유예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 협상 개시를 발표한 첫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외국 제조업체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고태연 베트남 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초기에는 '공황'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구체적인 규모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기업들이 현지 공장의 인력 감축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 협력사인 희성전자의 고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유예 발표 이후 기업들이 현재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하는 접근 방식 때문에 삼성전자는 베트남 관세에 대한 대응 방안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식통 2명에 따르면, 한 가지 대안으로 한국 구미 공장에서 미국 수출용 일부 스마트폰 모델을 생산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또 다른 4명의 소식통은 삼성전자가 인도에서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지만, 현재 인도 내 스마트폰 공급망이 삼성전자 전체 생산량의 약 20% 정도만 감당할 수 있어 우선 공급망 확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피치 솔루션스의 자회사인 BMI 리서치는 전자 제품이 베트남의 대미 수출에서 약 45%를 차지하며, 삼성전자와 같은 주요 제조업체들은 수요 감소를 예상해 생산량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에서 TV, 가전 제품, 디스플레이 패널 등도 생산하고 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수출액은 약 540억 달러(약 77조 202억 원)로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약 15%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현지 공장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하노이 북부 타이응우옌의 삼성전자 공장에서 근무하는 39세의 응우옌 티 하오 씨는 "모든 것이 다 잘릴까 봐 두렵다"고 우려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