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인쇄기 세계 1위 독일 쾨니히 & 바우어, 미국 연준에 공급
미국 내 경쟁 없어 당분간 독일 기술 의존 불가피
미국 내 경쟁 없어 당분간 독일 기술 의존 불가피

지난 12일(현지시각)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따르면 독일 바이에른주 뷔르츠부르크에 위치한 인쇄기 제조업체 쾨니히 & 바우어(Koenig & Bauer)는 은행권 인쇄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 기업이다. 1817년 설립된 이 회사는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어선다. 쾨니히 & 바우어 측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중앙 은행에 기계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역시 예외는 아니다.
◇ 미국 달러화, 독일 기술로 탄생
놀라운 점은 미국 내에 은행권 인쇄기를 생산하는 경쟁업체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 조폐국은 달러화 인쇄를 위해 정기적으로 쾨니히 & 바우어에 대규모 주문을 할 수밖에 없다. 회사 측은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유통되는 대부분의 달러 지폐가 독일산 기계에서 인쇄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는 다소 배치되는 모습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쾨니히 & 바우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산업 기반 강화를 위해 현대적인 생산 설비 확충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비 상당 부분이 독일에서 수입되기 때문이다.
신문, 잡지 등 각종 인쇄물 생산에 사용되는 하이델베르거 드루크마시넨(Heidelberger Druckmaschinen) 역시 미국 시장의 주요 공급업체다. 회사 측 대변인은 "미국 시장에서 매우 강력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 관세에도 굳건한 독일 기술력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독일 기계 제조업체들의 대미 수출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 기계 제조업체 협회(VDMA)의 울리히 아커만 수석 경제학자는 "미국 경제는 여전히 강력하며, 기업들의 투자 수요 또한 꾸준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자동화 및 디지털화 분야에서 미국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독일 기업들이 수혜를 입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로화 대비 달러화 약세로 인해 독일 제품 가격이 상승했지만, 이는 미국 시장의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커만 수석 경제학자는 "미국 고객들은 독일 기계의 높은 품질과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독일 기계 제조업체들은 미국 시장 외에도 중국 시장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독일 기계의 최대 단일 시장으로 부상했으며, 2024년 독일 기계 수출의 약 17%가 중국으로 향했다. 미국은 약 10%로 그 뒤를 이으며 2위를 기록했다.
중국 경제 성장 둔화는 독일 기계 제조업체들에게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아커만 수석 경제학자는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독일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독일의 첨단 기술, 특히 기계 공학 분야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달러화 인쇄라는 상징적인 영역에서조차 독일 기술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내 경쟁 기업의 부재로 인해 이러한 의존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