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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봇이 점령한 인터넷, 인간보다 많아진 자동화 트래픽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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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봇이 점령한 인터넷, 인간보다 많아진 자동화 트래픽의 위험

AI 발전으로 급증한 봇 활동, 전체 웹 트래픽 51% 차지...사이버 범죄 확산 위협
웹 환경에서 인간보다 많은 봇이 활동하며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봇 트래픽이 이미 인간의 활동량을 넘어선 가운데,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봇의 양산을 더욱 부추기며 사이버 범죄 악용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웹 환경에서 인간보다 많은 봇이 활동하며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봇 트래픽이 이미 인간의 활동량을 넘어선 가운데,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봇의 양산을 더욱 부추기며 사이버 범죄 악용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수년간 웹 환경은 인간이 아닌 자동화 시스템, 즉 봇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는 '죽은 인터넷' 이론이 제기돼 왔다. 영국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지난 15(현지시각) 이제, 그 이론이 현실로 다가온 듯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보도했다.

사이버 보안 업체 탈레스의 연례 보고서인 '배드 봇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인 51%가 실제 인간이 아닌 자동화된 봇 시스템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이 봇 활동이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봇 트래픽 비중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다. 전년도에는 정확히 50%였으며, 그 이전 해에는 이미 봇 트래픽이 인간 트래픽을 넘어설 위기에 처해 있었다.

◇ 봇 천국 된 웹, 공격은 더 쉬워지고 정교함은 떨어져


탈레스는 보고서를 통해 단순한 봇의 숫자 증가보다 더 심각한 점을 강조했다. 사이버 범죄자들이 악의적인 목적으로 봇을 생성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드는 AI와 대규모 언어 모델 도구의 발전이 이러한 봇 증가의 주요 원인이다. 다시 말해 사이버 범죄자들이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해 또 다른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공격의 빈도와 공격에 동원되는 봇의 수는 늘었지만, 공격 자체의 정교함은 오히려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여행 산업은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분야 중 하나로 나타났지만, 과거에 비해 공격 방식은 상당히 단순해졌다. 탈레스는 이와 관련해 "AI 기반 자동화 도구가 공격자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 과거보다 덜 숙련된 행위자들도 기본적인 봇 공격을 쉽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사이버 범죄자들이 과거의 복잡한 공격 방식을 버리고, 자동화의 용이성을 바탕으로 훨씬 더 빈번하고 광범위하게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40% 이상이 봇 트래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당 부분이 악성 봇으로 추정된다.

◇ 정교함 낮아진 공격, 자동화로 빈도와 범위는 확대


결국 인터넷 자동화의 문턱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이제는 간단히 AI 시스템과 대화하며 원하는 작업을 요청하는 것만으로도 봇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웹 전반에 걸친 심각한 문제다. 과거에는 정교한 자동화 공격을 수행하기 위해 상당한 기술과 자원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챗GPT와 같은 시스템에 몇 마디 말만 입력하면 봇을 손쉽게 생성하여 웹을 장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봇들은 스스로 다른 봇을 생성하고, 바이러스처럼 쉽게 확산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체크포인트(Check Point)의 연구에 따르면, 오픈AI의 챗GPT를 이용해 악성 코드를 생성하거나 정교한 피싱 이메일을 제작하는 등 사이버 범죄에 AI 챗봇이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웹의 주요 사용자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는 컴퓨터들의 집합체라는 '죽은 인터넷'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음모론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는 적어도 절반은 진실에 가깝다. 실제로 자동화된 채팅이 웹 전체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X(구 트위터)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게시물에 자동으로 댓글을 다는 봇들이 서로 응답하며, 의미 없는 단어들로 가득 찬 긴 대화를 생성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죽은 인터넷 이론의 섬뜩한 점은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아무도 당신이 개인지 모른다는 오래된 농담처럼, 이제는 아무도 당신이 봇인지 알 수 없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사용 편의성은 우리가 연결된 상대방이 실제 인간인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탈레스 보고서가 시사하듯, 죽은 인터넷 이론의 공포는 우리가 공격받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고립되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인터넷 환경에 대한 더 큰 문제는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봇들이 어떤 형태로든 맹렬하게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 자동화된 시스템들은 인터넷을 휩쓸고 다니며 취약점을 악용하고, 결제 사기를 통해 돈을 훔치고, 계정을 탈취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F5의 보고서는 자동화된 봇 공격이 계정 탈취, 사기 증가, 노동 비용 증가, 투자자 평가 왜곡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금전적 손실과 경제적 기회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쩌면 정말로 인터넷이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