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 굴복해야 한다" 자유협력 질서 대신 힘의 논리 득세 우려

하라리는 칼럼에서 "트럼프의 정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이제껏 수차례 드러났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그 정책에 놀라워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의 정책은 매우 일관되고, 세계관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어서, 이 시점에서 여전히 놀라움을 표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하라리에 따르면, 자유주의 질서의 지지자들은 세계를 '모두가 이익을 얻는' 협력 네트워크로 보지만, 트럼프는 세계를 모든 거래에 반드시 이기는 쪽과 지는 쪽이 존재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한다. 이 관점에서 국제 협약과 기구, 법률은 "어떤 나라는 약화시키고 다른 나라는 강화하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고 하라리는 설명했다.
◇ 고립된 국가들의 실체는 군비 경쟁과 제국주의 확장
하라리는 트럼프가 구상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높은 재정적, 군사적, 문화적, 물리적 장벽으로 국가들이 분리되어 있는 요새의 모자이크"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구상의 핵심에는 국가 간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해법은 간단하다, 갈등을 예방하는 방법은 약자가 강자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갈등은 약자가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때만 발생한다. 그러므로 전쟁은 언제나 약자의 잘못이다"라고 하라리는 설명했다.
이러한 논리가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하라리는 구체적 사례로 "트럼프의 세계관에 따르면, 정의, 도덕, 국제법에 대한 고려는 무의미하며, 국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힘일 뿐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약하기 때문에 항복했어야 했다. 트럼프의 비전에서 평화는 항복을 의미하며, 우크라이나가 항복을 거부했기 때문에 전쟁은 그들의 잘못이다"라고 설명했다.
하라리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합병 계획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그는 "트럼프의 논리에 따르면, 약한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훨씬 더 강한 미국에게 양도하기를 거부하고 미국이 그린란드를 무력으로 침공한다면, 모든 폭력과 유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덴마크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라리는 이러한 고립주의 비전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 약한 국가는 결국 강한 이웃 국가에 삼켜져 제국이 형성될 것이다. 둘째, 모든 국가는 약해질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자원은 경제 개발과 복지 프로그램에서 국방으로 전용되는" 군비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셋째, 상대적 우위를 결정할 명확한 기준이나 방법이 없어 국가 간 잘못된 계산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하라리는 트럼프가 덴마크를 대하는 방식을 들어 그의 제국주의적 성향을 설명했다. 그는 "9·11 테러 이후 덴마크는 나토 조약의 의무를 열정적으로 이행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44명의 덴마크 군인이 사망했는데, 이는 미국이 겪은 사망률보다 높은 수치다. 트럼프는 굳이 '고맙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덴마크가 그의 제국주의적 야망에 굴복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분명히 동맹보다는 굴복을 원한다"고 비판했다.
하라리는 트럼프의 힘의 논리가 과거 역사에서 얼마나 실패했는지 구체적 사례로 설명했다. "1965년 미국은 자국이 북베트남보다 훨씬 더 강하며, 충분한 압력을 가함으로써 하노이 정부로 하여금 협상을 타결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북베트남은 미국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엄청난 역경을 딛고 인내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그는 말했다.
또한 "1914년에 독일과 러시아는 크리스마스까지는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계산했다"면서 국가 간 힘의 관계를 잘못 판단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경고했다.
하라리는 트럼프식 고립주의 비전이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부상하기 전 수천 년 동안 지배적이었던 비전"이라고 설명하며, "트럼프의 공식은 이전에도 너무나 여러 번 시도되고 시험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보통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다. 제국 건설과 전쟁의 끝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21세기에는 "기후 변화와 초지능 AI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처해야 하지만, "강력한 국제 협력 없이는 이러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라리는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는 기후 변화나 통제 불능의 AI에 대한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그의 전략은 단순히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라리는 "2016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처음 당선된 이후 10년간의 혼란과 불확실성이 지나간 후, 우리는 이제 자유주의 이후의 무질서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사태가 계속 진행된다면 "단기적인 결과는 무역전쟁, 군비 경쟁,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이어질 것이며, 궁극적인 결과는 세계 전쟁, 생태계 붕괴, 통제 불능의 AI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라리는 끝으로 트럼프의 비전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보편적 가치나 구속력 있는 국제법이 없다면, 라이벌 국가들의 경제와 영토 분쟁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FT는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