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4억 신자의 지도자 자리 놓고 치열한 각축
교회 내 보수·개혁 노선 첨예한 대립
아프리카·아시아 가톨릭 성장세 반영된 후보군 주목
교회 내 보수·개혁 노선 첨예한 대립
아프리카·아시아 가톨릭 성장세 반영된 후보군 주목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1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란스러웠던 재임이 끝나면서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의 지도자 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불붙었고, 교회는 미래 방향성에 대해 깊이 분열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바티칸에서 교황 서거 후 몇 주 내에 비밀리에 열릴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에 참석할 135명의 추기경 가운데 약 20명이 차기 교황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후보군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급성장하는 반면 전통적인 유럽 교세는 쇠퇴하는 세계 교회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 가톨릭 교리를 중시하는 보수파와 더 포용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개혁파 간의 이념 대립도 심화된 상황이다.
가톨릭 언론 단체 '크룩스'의 존 앨런 주니어 편집장은 "추기경단 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 사이에 강한 분열이 있다"며 "두 진영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얻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주요 교황 후보들... 개혁 성향과 전통 수호 성향 뚜렷한 대립구도
바티칸 국무원 장관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70)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오른팔로 현재 교황청 행정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교황의 포용 정책과 사회 참여 기조를 이어갈 인물로 평가받지만, 교황청의 재정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파롤린 추기경은 나이지리아, 멕시코, 베네수엘라에서 교황청을 대표했으며 바티칸과 베이징의 관계 회복에 기여했으나, 중국 정부의 주교 임명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비판도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마테오 주피 추기경(69)은 '서민 속 사제'로 알려져 있으며, 사회 정의와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 이혼자와 성소수자(LGBT+) 신자들의 포용, 타종교와의 대화를 중시한다. 주피 추기경은 1992년 모잠비크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을 중재했으며,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크라이나 특사로 활동하며 러시아에 강제 이주된 우크라이나 아동 송환을 위해 노력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인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60)은 비교적 적은 나이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30년 이상 예수 관련 성지를 관리하며 활동했고, 2016년 파산 위기에 처한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청을 회생시킨 경험이 있다. 히브리어에 능통한 피자발라 추기경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모두 비판하는 균형 잡힌 입장을 보여왔으며, 다양한 종교·정치 집단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전통주의 성향의 로버트 사라 추기경(79)은 1980년대 기니의 사회주의 독재 정권과 대립했던 이력이 있으며, 2001년부터 로마 교황청에서 국제 선교와 전례를 담당했다. 사라 추기경은 전임 베네딕토 교황과 함께 사제 독신제를 옹호하는 저서를 집필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 특히 동성 커플 축복 허용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프리돌린 암봉고 베순구 추기경(65)은 사회 정의 옹호자로서 자국의 자원 착취, 불평등, 부패, 환경 문제를 다루며 정부와 대립해왔다. 그러나 가족 가치에 관해서는 매우 보수적 입장을 보이며, 아프리카 주교들이 동성 커플 축복을 거부하도록 이끌었고 이를 "본질적으로 악하며" 아프리카의 "문화적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암봉고 추기경이 신세대 사제 양성에 실패하여 교구 인력난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67)은 마닐라 대주교를 지내며 목회와 행정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아시아의 프란치스코'로 불리는 타글레 추기경은 온건한 개혁주의자로서 개인 윤리보다 사회 정의 문제에 중점을 두며, 교리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신자들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2019년부터 로마 교황청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 뛰어난 미디어 활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알제리 태생인 장 마크 노엘 아벨린 추기경(66)은 이민자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종교 간 대화를 장려하는 인물이다. 헝가리 출신의 페테르 에르도 추기경(72)은 전통주의자로서 개인과 신의 관계를 중시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이후 종교적 가르침의 중요성을 회복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69)은 페루에서 오랫동안 봉사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고, 분열된 교회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중도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FT는 이번 교황 선출은 가톨릭 교회의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매체는 전통과 개혁 사이의 균형, 유럽 중심에서 글로벌 교회로의 변화 등 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