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고립된 학습 데이터 한계 넘어 외부 세계와 연결 길 열려
경쟁사 기술 수용 이례적...산업계 '둘러쌓인 정원' 깨지나 주목
경쟁사 기술 수용 이례적...산업계 '둘러쌓인 정원' 깨지나 주목

보도에 따르면 올트먼 CEO는 자신의 계정에 "여러분은 MCP를 매우 좋아한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제품에서 지원을 추가하게 되어 기쁘다"라고 짧은 글을 남겼다. 단순한 기술적 공지처럼 보였던 이 트윗에는 예사롭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번 발표는 치열한 AI 개발 경쟁 속에서 이례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인 AI 기업 오픈AI가 챗GPT 개발을 넘어, 직접적인 경쟁사인 앤트로픽(Anthropic)이 제안한 표준 규격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odel Context Protocol, 이하 MCP)'을 채택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앤트로픽은 조직 방침 차이로 오픈AI를 떠난 전 연구자들이 설립한 회사라는 점에서 이번 협력은 더욱 주목받는다.
◇ AI, 학습 데이터 한계 넘어 외부 세계와 연결
MCP는 언뜻 평범한 명칭처럼 들리지만, 인공지능과 디지털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앤트로픽은 MCP를 "LLM 애플리케이션과 외부 데이터 소스 또는 도구를 원활하게 통합하는 개방형 프로토콜"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간결하지만, AI의 시야를 극적으로 확장하려는 목표를 명확히 보여준다. 마치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컴퓨터가 자체 하드디스크 데이터만 다룰 수 있었던 것처럼, 현재 대다수 AI 시스템은 학습된 데이터에 묶여 특별한 구현 없이는 그것을 넘어서는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앤트로픽의 마이크 크리거 최고 제품 책임자는 이를 더 쉽게 설명한다. 그는 "LLM은 이미 가지고 있는 데이터나 평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연결될 때 비로소 최대한 유용해진다"고 말한다. MCP는 바로 이 지점을 해결하려는 본질적인 노력이며, AI가 외부 세계와 상호 작용할 표준화된 '언어'를 제공하는 데 의미가 있다.
AI가 고립된 상태로 존재할 때 발생하는 한계를 보면 MCP의 중요성이 더욱 명확해진다. 예컨대, 앤트로픽의 첨단 대규모 언어 모델 클로드 3.7 소네트(Claude 3.7 Sonnet)이나 오픈AI의 주력 멀티모달 AI 시스템 GPT-4o는 인간에 필적하는 텍스트 생성 및 복잡한 과제 해결 능력을 갖췄다. 그러나 이러한 높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맞춤형 통합이 없이는 사용자의 파일, 기업 데이터베이스, 개인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근본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이러한 제약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AI의 잠재력을 크게 제한하는 요소다. 마치 유능한 컨설턴트가 필요한 자료나 시스템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고 항상 중개자를 거쳐야만 하는 것과 같다.
앤트로픽은 2024년 11월 MCP를 오픈 소스로 발표하며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앤트로픽은 "AI 비서는 정보 고립과 레거시 시스템 뒤에 갇혀 있다", "모든 새로운 데이터 소스마다 고유한 맞춤형 구현이 필요하며, 진정으로 연계된 시스템의 확장은 어렵다"고 밝혔다.
◇ USB-C처럼 AI 상호운용 위한 '표준 언어'
기술의 역사는 곧 표준화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과거 USB 등장 이전에는 다양한 포트와 커넥터가 혼재했고, HTTP 보급 이전에는 데이터 종류마다 다른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사용해야 했다. SQL(에스큐엘)이 부상하기 전에는 데이터베이스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MCP가 목표하는 바는 이러한 표준화의 힘을 AI 분야에 가져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에듀케이터 디벨로퍼 블로그(Educator Developer Blog)에 기고한 한 개발자는 "MCP를 AI용 범용 USB-C(USB Type-C) 커넥터라고 생각해 달라. 언어 모델이 필요한 정보를 얻고 API와 대화하며 학습 당시의 지식을 넘어선 작업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프로토콜은 단순한 클라이언트-서버 아키텍처를 통해 작동한다. 개발자는 자신의 데이터 소스(파일, 문서, 데이터베이스, API 등)를 외부에 공개하는 MCP 서버를 구축할 수 있고, AI 시스템은 클라이언트로서 이 서버들에 연결해 필요한 정보나 작업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서 혁명적인 것은 기술 자체의 정교함(표준적인 웹 기술을 활용)이 아니라 바로 '표준화' 그 자체다.
◇ 경쟁사 기술 전격 수용... 산업 표준 도약
이 프로토콜의 기술적 특징 이상으로 흥미로운 것은 기업 간의 움직임이다. 일반적으로 기술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기술 환경을 만들어, 사용자가 한번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쉽게 옮겨갈 수 없게 만드는 전략을 자주 사용한다. 마치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원처럼, 일단 들어오면 쉽게 나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하지만 지난주 샘 올트먼은 앤트로픽이 책정한 프로토콜을 오픈AI가 구현할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이번 결정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단서는 생물학의 '수렴 진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종이 같은 환경적 압력에 노출될 때 각자 독립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발전시키는 생물학 현상인 수렴 진화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양사 모두 AI가 외부 데이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과제를 공통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앤트로픽의 마이크 크리거는 올트먼 CEO의 발언에 대해 "MCP에 대한 지지가 오픈AI에까지 확산되는 것을 보게 되어 기쁘다. MCP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또한 "MCP는 이미 수천 건의 통합이 이루어졌으며, 더욱 확대될 활기찬 개방형 표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앤트로픽이 2024년 하반기 MCP를 처음 도입했을 때, 이는 단순히 한 회사의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에 그쳤다. 그러나 예상외로 개발자 커뮤니티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구글 드라이브, 슬랙, 깃허브(GitHub), 다양한 데이터베이스 등 여러 서비스와 AI를 연동하기 위한 구현이 속속 등장하며, AI가 개인 파일이나 기업 시스템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트먼 CEO의 트윗 하나로 MCP는 단숨에 한 기업의 솔루션에서 업계 표준으로 도약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 역사에서 드물지 않은 패턴이다. TCP/IP가 인터넷의 기반이 되고, JSON이 데이터 교환에서 XML을 대체했듯이, 기술의 채택과 네트워크 효과가 시너지를 내면서 특정 과제를 해결하던 솔루션이 어느덧 업계 전체의 기초가 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MCP는 AI 비서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디지털 세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할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진다. MCP를 통해 AI는 단순히 학습된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을 넘어, 실시간 정보를 가져오고, 허가된 개인 데이터에 접근하며, 다른 시스템과도 연동하여 작동할 수 있게 된다.
진정으로 강력한 기술은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의식하지 않아도 사용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MCP는 AI를 바로 그 단계로 이끌기 위한 핵심 프로토콜이 될 수 있다. AI는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조작하는 '흥미로운 도구'에서 디지털 환경과 매끄럽게 연결되어 인간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눈에 띄지 않는 조수'로 진화할 계기를 맞은 것이다.
AI 시스템과 디지털 세계를 가로막던 벽은 지금 이 순간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