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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가격 비교, '대기 시간' 가치 무시 논란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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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가격 비교, '대기 시간' 가치 무시 논란 제기

빅맥 지수에 반영 시 필리핀 경제 규모 2370억 달러 축소
상품과 서비스 구매 시 소요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국가 경제 규모 크게 달라져
2023년 3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 남자가 빅맥의 새로운 대안인 빅히트 버거를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23년 3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 남자가 빅맥의 새로운 대안인 빅히트 버거를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구매력 평가(PPP) 기반 국제 가격 비교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얻기 위해 소요되는 '대기 시간'의 경제적 가치가 반영되지 않아 국가 간 경제 규모가 왜곡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여기서 '대기 시간'이란 햄버거를 주문하고 받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나 공공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는 시간과 같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지연 시간을 의미한다.

배런스는 지난 25(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국제 경제 비교에서 간과되는 '대기 시간의 비용'이 전 세계 경제 규모 산정에 큰 오류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 대기 시간 반영 안 된 국제 가격 비교의 맹점

국제 비교 프로젝트(ICP)1968년 유엔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이 출범시킨 글로벌 계획으로, 환율 왜곡을 제거해 통화의 실제 가치를 비교하는 구매력 평가(PPP) 개념을 도입했다. 현재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가격을 비교하는 정기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우간다 재무부 선임 경제학자로 재직 중인 ODI 글로벌 펠로우 미글레 페트라우스카이테와 조지타운 대학교 글로벌 인간 개발 프로그램 교수 어윈 R. 티옹슨은 "세계 빈곤 추정치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불안 보고서까지, 대부분의 국제 경제 측정은 PPP에 의존하고 있다""그러나 PPP 계산은 상품과 서비스의 금전적 가격만 고려할 뿐, 이를 얻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전문가는 구체적 사례로 이코노미스트지의 '빅맥 지수'를 들었다. 빅맥 지수는 1986년 이코노미스트지가 소개한 간단한 PPP 지표로,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맥도날드 빅맥 가격을 비교해 통화 가치의 고평가 또는 저평가 여부를 보여준다.

"한 나라의 근로자가 다른 나라의 근로자가 2분 안에 구입할 수 있는 동일한 제품을 사기 위해 두 시간을 줄을 서야 한다면, 실제 '비용'은 정말 동일한가?" 라고 페트라우스카이테와 티옹슨은 문제를 제기했다.

◇ 대기 시간 가치 반영 시 경제 규모 산정 크게 달라져

이들에 따르면, 시장 환율에서 달러당 약 58페소인 필리핀 페소는 빅맥 지수 기준으로는 달러당 29페소가 되어야 한다고 분석되는데, 이는 페소화가 저평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

미국에서 맥도날드의 평균 대기 시간은 2~3분인 반면, 필리핀에서는 온라인 리뷰와 전문가들의 경험에 따르면 20분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기 시간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고 빅맥 가격에 반영하면, 조정된 환율은 29페소가 아닌 40페소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차이는 필리핀 경제 규모 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페트라우스카이테와 티옹슨은 강조했다. 원래의 빅맥 지수 환율을 사용할 경우 필리핀 경제는 9060억 달러(1303조 원)로 추산되지만, 대기 시간을 조정한 환율을 적용하면 6690억 달러(962조 원)로 줄어들어 2370억 달러(3409000억 원)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은 연례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의 성장률을 PPP 기준으로 비교했다. 이 수치는 성장 비교, 자원 배분, 글로벌 제도 구성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금융권에서는 "PPP 기준으로 미국을 능가하는 중국이 IMF에서 더 많은 의석과 영향력을 가져야 하는지, 심지어 IMF가 워싱턴이 아닌 베이징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저소득국의 숨겨진 시간 비용, 국제 개발의 새로운 과제

전문가들은 대기 시간이 저소득 국가에서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으며, 여성과 어린이가 불균형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 신청, 허가 대기, 기본 서비스 이용, 물 긷기 등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페트라우스카이테와 티옹슨은 "국제 개발의 핵심은 물, 신용, 교육 및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에서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결핍을 무한한 기다림 시간, 즉 가치 있지만, 결코 전달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 분석가들 사이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PPP 매뉴얼 280페이지에서 대기 시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 국제 가격 비교의 심각한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시장의 규모와 경제적 위상에 대한 현재의 평가가 재고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배런스는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