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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그리드 배터리 저장 장치 용량, 5년간 5배 급증…에너지 혁신 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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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그리드 배터리 저장 장치 용량, 5년간 5배 급증…에너지 혁신 선도

가격 하락·규제 완화가 확산 불 지피다
태양광·풍력 간헐성 보완…전력망 안정 핵심 부상
미국에서 그리드 규모 배터리 저장 장치 용량이 지난 5년간 5배 폭발적으로 급증하며 에너지 시스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가격 하락과 규제 완화에 힘입어 빠르게 확산되는 배터리 저장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고질적인 간헐성 문제를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전력망 안정화의 핵심 열쇠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에서 그리드 규모 배터리 저장 장치 용량이 지난 5년간 5배 폭발적으로 급증하며 에너지 시스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가격 하락과 규제 완화에 힘입어 빠르게 확산되는 배터리 저장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고질적인 간헐성 문제를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전력망 안정화의 핵심 열쇠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에서 그리드 규모 배터리 저장 장치(Grid-Scale Battery Storage)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며 에너지 시스템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 기술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각) 와이어드 보도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 내 그리드 배터리 용량은 5배 급증했으며, 2024년에만 12.3기가와트(GW)가 설치됐다. 올해 신규 설치량은 지난해의 거의 두 배에 달할 전망이며, 총 배터리 저장 용량은 현재 26기가와트를 넘어 양수발전 용량을 추월했다.

◇ 전력망의 근본적 제약과 저장의 필요성


전력을 생산하는 데 있어 까다로운 점은 즉시 사용하거나 아니면 잃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사실은 2조 달러(약 2877조 원) 규모의 미국 전력망을 운영하는 데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해 왔다. 거대한 발전기는 대륙 전체에 걸친 복잡한 망을 따라 전기를 보내며, 모든 사용자가 언제든 전기를 쓸 수 있도록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정밀하게 맞춰야 한다.

전력망은 최대 수요 시점에 맞춰 설계되므로, 사용량이 적을 때는 발전 설비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거나 생산된 전력을 낭비해야 했다. 이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 위해 30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기를 잠시 저장했다가 나중에 사용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력망을 과도하게 구축하거나 발전과 수요 균형을 맞추는 데 드는 노력을 줄일 수 있고, 간헐적 전원의 단점을 완화하며, 비상 시 백업 전력 확보 및 분산 시스템으로의 전환도 가능해진다.

◇ 가격 경쟁력 확보와 정책 지원이 성장 견인


그리드 규모 배터리 저장의 약진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핵심 기술인 리튬 이온 배터리의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에너지 밀도가 향상된 것이 주효했다. 존 자후란식(John Zahurancik) 플루언스(Fluence) 사장은 "우리가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는 2008년에 있었고, 당시 배터리 가격은 킬로와트시당 약 3000달러(약 431만 원) 수준이었다"며, "이제 우리는 전체 시스템 설치 비용이 킬로와트시당 150달러(약 21만 5820원)에서 200달러(약 28만 7760원) 수준인 시스템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휴대폰이나 전기차 배터리 제조 기술 발전의 혜택을 공유한 결과다.

마이카 지글러(Micah Ziegler) 조지아텍(Georgia Tech) 교수는 "모두 하나의 큰 파이프라인이다. 휴대폰, 자동차, 전력망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모두 공통된 특성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전 세계 리튬 이온 배터리의 80%를 생산하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것도 가격 하락에 기여했다.

또한 풍력 및 태양광 에너지의 급증은 배터리 수요를 촉진하고 기술 개선을 압박했다. 풍력과 태양광은 종종 가장 저렴한 새로운 전력 생산원이며, 배터리는 이들의 가변성을 보완해 저장 장치 규모 확대를 위한 강력한 이유를 제공한다. 2024년 미국에 추가된 신규 전력의 84%가 태양광과 저장 장치 조합이었다.

규제 환경 변화도 중요했다. 연방 에너지 규제 위원회(FERC)의 명령 841은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 도매 시장에 참여하는 장벽을 제거했으며, 캘리포니아, 일리노이(Illinois), 메릴랜드(Maryland) 등 11개 주의 특정 조달 목표 설정도 도입을 촉진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그리드 배터리 산업 성장을 촉진했다.

◇ 전력망 안정화와 효율성 증대 효과


배터리 저장은 청정 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고 전력망 안정성, 신뢰성, 복원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가장 일반적인 용도는 주파수 응답이다. 미국 송전선을 흐르는 교류는 60헤르츠(hertz) 주파수로 순환하는데, 수요 변동으로 주파수가 벗어날 경우 전력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 열 발전기와 달리 배터리는 거의 즉시 가동되므로, 주파수 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안정성을 유지한다.

또한 발전기 고장이나 급격한 수요 증가 시 예비 전력 역할을 하고, 하루 동안 전력 부하의 기복을 부드럽게 만든다. 생산 비용이 저렴할 때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수요가 많고 가격이 비쌀 때 판매하는 시간 이동(time-shifting)도 가능하다. 동등한 발전소보다 건설이 빠르고 허가 절차가 간소하다는 장점도 있다.

배터리는 이미 과부하된 전력망에 유용한 것으로 입증됐다. 지난해 텍사스(Texas)에서는 폭염 시 배터리가 기록적인 전력을 공급하며 정전 위험을 막기도 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텍사스의 유틸리티 규모 배터리는 4100% 증가한 5.7기가와트를 넘어섰다. 그리드 배터리는 다른 발전기에도 후광 효과를 가져온다. 석탄, 가스, 원자력 등 대부분의 열 발전소는 일정한 속도로 운영되는 것을 선호한다. 수요에 맞춰 출력을 높이거나 낮추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발생하지만, 배터리가 가변성(variability)의 일부를 흡수하면 열 발전소는 가장 효율적인 속도에 더 가깝게 유지될 수 있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비용을 통제할 수 있다.

자후란식 사장은 이를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같은 것"이라며, "배터리가 모든 변동을 흡수하기 때문에 가솔린 소비가 더 좋아진다"고 비유했다. 스테파니 스미스(Stephanie Smith) 이올리언(Eolian)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값비싼 전력망 업그레이드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그리드 배터리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았다. 필요할 때 추가 전력을 공급할 배터리가 있다면 최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대규모 송전선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

스미스 COO는 "독립형 배터리로 우리가 하는 일은, 그것을 더 많이 확보할수록 새로운 송전선 건설과 같은 필요성을 완화하거나 적어도 단축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는 전력망이 변화하는 에너지 필요에 더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기능들은 궁극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며 저렴하고 깨끗한 전력망으로 이어진다.

◇ 남은 과제와 향후 전망


리튬 이온 배터리는 아무리 뛰어나도 한계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그리드 배터리는 2~8시간 저장에 최적화되어 있어 며칠, 몇 주, 몇 달 단위의 장기 저장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 또한 에너지 저장은 회수에 수십 년이 걸리는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경기 침체 가능성,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불확실성이 투자 위축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한 상황에서 원자재 경쟁은 심화될 전망이다.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프로젝트 대기열도 문제다. 모든 에너지 시스템, 특히 재생에너지 및 배터리 프로젝트는 인허가 및 서류 작업 지연으로 연결에 3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스미스 COO는 트럼프 행정부가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청정 에너지 인센티브를 무효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IRA에 대해 걱정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곡선을 바꿀 것이고, 솔직히 우리는 어떤 형태의 청정 에너지에 대해서도 현재 곡선을 바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다만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 내 배터리 제조를 오히려 촉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에너지부(US Department of Energy)는 에너지 저장 공장과 공급망에 투자하고 있으며, 올해 10개의 미국 배터리 공장이 추가 가동될 예정이다. 전 세계 총 배터리 제조 용량은 2025년에 약 7900기가와트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유틸리티 규모 에너지 저장은 광대한 미국 전력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확장 잠재력은 엄청나다. 자후란식 사장은 "우리가 가속하고 빠르게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며, "저장 장치가 설치된 전력 용량의 20% 또는 30%가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리드 규모 배터리 저장이 전력 시스템의 미래를 재편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