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투자 철수 후 채권단 통제권 다툼 격화
텅 빈 빌딩 장기 방치… 주변 상권까지 '피해 눈덩이'
텅 빈 빌딩 장기 방치… 주변 상권까지 '피해 눈덩이'

◇ 좀비 빌딩 된 시카고의 랜드마크
시카고 리버 노스 지구에 위치한 약 170만 평방피트 면적의 대형 오피스 타워가 대표적인 사례다. 소유주였던 사모펀드 대기업 블랙스톤이 2년 전 이 단지에서 발을 뺀 후, 건물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세입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입수한 문서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핌코와 오크트리 캐피탈을 포함한 대출 기관들은 이 건물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약 1년간 치열하게 다퉜다. 재정적 불확실성 속에서 건물을 매각하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기존 세입자들은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다.
◇ 공실 악순환 심화...시장 전체에 드리운 그림자
과거 부채 투자자들은 주요 오피스 빌딩 매입을 위해 발행된 CMBS가 트리플 A 신용 등급과 블랙스톤, 브룩필드 같은 대형 회사와 연관되어 있어 안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리버 노스 빌딩의 경우, 투자자들은 2억 달러(약 2873억 원)가 넘는 장부상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티처스 보험연금협회는 2023년 재무제표에 따라 이 거래에서 총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0년 팬데믹 이후 오피스 점유율은 전국적으로 급락했다. 많은 고용주들이 비용 절감과 직원 선호도를 반영해 하이브리드 또는 완전 원격 근무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복귀를 추진하고 있지만, 공간 수요는 여전히 낮다. 기업들은 맨해튼의 파크 애비뉴나 시카고의 웨스트 루프처럼 인기 있는 일부 신축 빌딩으로 몰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회사 애비슨 영에 따르면, 시카고강 만곡부에 위치한 리버 노스와 같이 덜 인기 있는 지역에서는 재정이 안정적인 건물조차 세입자 유지가 어렵다. 리버 노스의 오피스 활용률은 2019년 수준의 약 48%에 불과하며, 시카고 중심 업무 지구(CBD) 평균 55%, 전국 평균 62%보다 낮다.
◇ 주변 상권 붕괴...사라진 유동 인구의 대가
블랙스톤이 버린 리버 노스 오피스 타워 내부에서는 수천 명을 위해 지어진 에스컬레이터를 소수의 직원들만이 이용했다. 로비 커피 바의 수제 에스프레소 머신은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고 WSJ이 전했다. 이전에 빌딩 근무 인력에 의존했던 주변 상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건물 곳곳에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고, 차량 및 보행자 통행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텅 빈 가게의 점원들은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빌딩 모퉁이에 있는 바 겸 그릴인 섀머록 클럽의 71세 소유주 메리 가브리엘은 "코로나 이전에는 보통 금요일 점심 시간 줄이 가게 밖까지 늘어섰지만, 아무도 직장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섀머록의 현재 매출은 팬데믹 이전보다 10% 낮으며, 코로나 이전에 미용사들에게 임대했던 위층 공간은 현재 비어 있다.
로마식 피자 가게 바 카고의 앤서니 스테파니는 수년간의 어려움 끝에 작년 12월 폐점했다. 그는 "피해를 막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직원을 50명에서 20명으로 줄였음에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리버 노스에 몇 남지 않은 자전거 배달원 중 한 명인 딜런 자코위악은 날씨가 좋을 때 예전에는 붐볐던 오피스 빌딩이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그는 "창문이 많이 어둡거나, 컴퓨터로 일하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리에 그냥 텅 빈 책상만 보인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 채권단 갈등 속 해법 난망...'오프라인' 건물 속출
CMBS로 자금을 조달한 빌딩들은 때때로 한 지역에 밀집해 있어, 문제가 발생하면 경제적 불황이 더 심화될 수 있다. 현재 필라델피아 센터 시티의 마켓 스트리트 2마일 구간을 따라 이러한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한 3개의 빌딩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피스 빌딩을 아파트로 전환하는 것이 잠재적인 해결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시카고는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리버 노스의 빌딩처럼 거대한 부동산은 수익성을 확보하며 용도를 변경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는 한계가 있다.
블랙스톤은 2015년 리버 노스 오피스 단지를 인수했는데, 당시 광고 대기업 오길비 등 세입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18년에는 약 3억 달러(약 4309억 원)의 채권과 티처스 보험연금협회로부터 6000만 달러(약 862억 원)의 대출로 재융자했다. 그러나 2023년 공실률이 30%에 달하자 블랙스톤은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됐고, 채권 계약에 따라 웰스 파고에게 특별 관리자로서의 관리 권한이 이전됐다.
이후 웰스파고가 누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두고 오크트리로 대표되는 후순위 채권 보유자와 핌코 등 선순위 채권 소유자 사이에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WSJ이 검토한 전자 메시지에 따르면, 선순위 채권 보유자들은 웰스 파고에 정보 요청을 쏟아냈지만 몇 달 동안 답변을 받지 못했다. 블랙스톤 대변인은 "해결을 위해 매각 절차에 대해 대출 기관과 협력해 왔다"고 밝혔다.
핌코는 채무 불이행 1년 후인 지난해 6월에야 빌딩 통제권을 확보했다. 이제 핌코는 높은 공실률의 건물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세입자는 대부분 원격 근무 체제이지만, 임대 계약을 해지할 수 없어 사무실을 거의 비워두고 있다.
부실 부동산 매입자인 악소닉 캐피탈의 맷 와인스틴 공동 최고 투자 책임자는 리버 노스의 오피스 타워를 검토했지만 매입을 포기했다. 그는 "이 빌딩은 사실상 오프라인 상태다"라고 진단했다. 이 빌딩뿐 아니라 전국 유사 빌딩들도 계속해서 세입자를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