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인류는 극지(極地) 탐험이라는 새롭고도 신기한 탐험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극지에 도달한다는, 극히 위험하지만 매우 경이로운 이 도전에 많은 탐험가가 그들의 삶과 목숨을 걸었다. 그중 남극 탐험의 길에서 같은 시기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남극점 도달이라는 매우 영광스러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 두 인물이 있었다. 모험의 시작부터 진행 그리고 그 결과까지 극명하게 차이를 보여준 그들은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과 영국의 로버트 팰컨 스콧(Robert Falcon Scott)이다.
한편, 영국의 해군장교 로버트 스콧은 남극점 탐험 외에도 과학적 연구를 위해 지질학자·기후학자·자연생태학자 등으로 구성된 여덟 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같은 해 1911년 10월 27일 남극 탐험을 시작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은 탐험대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탐험대는 개 썰매 대신 동력 썰매와 조랑말을 준비하고 멋진 기능성 방한복도 구비했다. 그러나 동력 썰매는 얼마 가지 못해 얼어서 망가졌고 조랑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 그렇게 되자 대원 8명이 100㎏이 넘는 물품을 직접 운반했다. 멋들어진 기능성 방한복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대부분의 대원들이 동상에 걸려 고생했다. 10주에 걸친 1300㎞의 험한 행군으로 거의 녹초가 되어 다음 해인 1월 18일 남극에 겨우 도착했으나 돌아오는 도중 스콧을 포함한 대원이 전원 사망했다.
아문센의 리더십 평가는 다음과 같다. 동료와의 유대 의식과 우정보다는 목표 달성과 생존을 우위에 두었다. 그랬기에 그는 때로는 이기적이었고 때로는 ‘냉혹한 독불장군, 비밀주의자’로 행동했다. 즉 ‘일이 먼저다’라는 과업중심형 리더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스콧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조직 속에서 동료들과의 유대감을 중요시했고 모든 상황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학자로서의 소양과 신사적인 매너를 갖춘 사람으로 평가되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배려형 리더로 보인다.
최근에는 독선과 독단으로 목표를 달성한 아문센의 리더십보다는 동료들과 우의를 나누고 남극점 도달 외에 학술적 연구도 병행한 스콧이 더 인정할 만하다는 입장이 우세한 듯하다. 다만, 리더십에도 균형이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아문센과 함께한 동료들은 그 리더십에 이끌려 남극점을 발견하고 성공의 열매를 맛보기는 했지만, 결코 아문센과 인간적인 동료애를 갖지는 못했다. 스콧의 동료들은 최초의 남극점 도달에 실패한 후에도 혹한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동료애를 과시했고 끝내 우정과 신의를 의심하지 않고 명예롭게 죽어갔다.
어느 리더십이 옳은 리더십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악조건 속에서 남극점 도달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모든 팀원을 무사 귀환하게 한 아문센의 치밀한 준비와 리더십은 때로 극복하기 힘든 위기 상황에 봉착한 리더라면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마찬가지로, 위기 속에서도 함께한 동료에 대한 신의와 배려를 잊지 않아 그들 모두 인간답게 생을 마칠 수 있게 한 스콧의 리더십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병철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