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전처 아들과 친딸이 음식을 잘못 먹고 설사를 심하게 했다. 놀란 여인은 의술이 좋은 한 도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도인이 진맥해보니 식중독이었다. 도인은 짐짓 침울한 표정으로 두 아이의 똥 맛을 보아야 치료를 할 수 있다며 어미 된 도리로 똥 맛을 보고 냄새와 맛을 말해 달라고 했다. 여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먼저 자신이 낳은 딸의 똥을 검지로 슬쩍 찍어 혀끝에 대고 입맛까지 한 번 다셔보더니 맛은 시큼하고 신 내가 난다고 예사롭게 말했다. 그런데 전처 자식의 똥을 곁눈질로 한 번 힐끔 쳐다보면서 한 아이 똥 맛만 봐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도인은 남자와 여자는 체질이 달라서 안 된다며 심각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마지못해 여인은 찌푸린 얼굴로 전처 자식의 똥을 손끝에 살짝 묻혀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똥을 혀끝에 묻히기도 전에 토악질부터 했다.
우리는 평소에 인간의 두 마음을 본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갈라져 나오는 그 마음의 이중적 속성을 알 수 있다. 마음이 우울하면 향기 짙은 장미나 국화도 아름다운 줄 모르고, 마음이 즐거우면 길가 작은 풀잎도 아름다워 보인다. 세상 보는 눈도 그렇다. 기쁠 때는 무엇이건 아름답고, 슬프고 괴로우면 아름답지 못하다. 자신에게 덕을 주면 악인이라도 가깝고, 해를 주면 부모 자식도 미워진다.
노자는 천하의 모든 아름답다고 알고 있는 아름다움은 추하고, 선하다고 알고 있는 선은 선하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을 차별 식 또는 분별 식이라 하거니와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마음이 상대적으로 갈라져 나오므로 다툼이 일어나고 세상은 평화롭지 못하다. 따라서 다툼이 없이 덕만 베푸는 도를 닮으면 인간이 할 바 최상의 이상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이렇게 썼다. 있고 없고, 어렵고 쉽고, 높고 낮고, 길고 짧고, 앞과 뒤, 행복과 불행이 상대적으로 만물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필연은 높고 낮음이 하나로 이어지고 길고 짧음 내지 어렵고 쉽고…등등 육안으로 보면 상대적이지만 기실은 상대적인 것끼리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처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비록 상대적이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면, 성공의 끝은 실패의 시작이고 실패의 끝은 성공의 시작이며, 행복의 끝은 불행의 시작이고 불행의 끝은 행복의 시작이므로 성공하고 행복하다고 자만하지 말고, 실패하고 불행하다고 절망하지 말라는 교훈이 얻어진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