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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백조는 씻지 않아도 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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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백조는 씻지 않아도 희다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
이 장의 핵심은 불상현(不尙賢)이라 하여 어질고 재주와 지식이 뛰어남을 경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얻기 어려운 보화를 귀하지 않게 하고 욕심낼 만한 것을 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에 혼란이 없다고 하였다.

불상현은 지식, 재주, 어진 덕행이 없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심낼 만한 것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견물생심·見物生心)은 익히 알고 이해하기도 쉽다. 하지만 불상현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인의와 예절은 인간이 지켜야 할 바 최고의 덕목이란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규범이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의 사상과 철학이 집약된 내용인데 이를 부정하다니 괴이쩍고 생뚱맞기도 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견물생심이란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공자 사상과 철학의 해심인 인의와 예는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으로서 그 학문의 가치는 금은보화만큼 귀한 것이었다. 옛날에는 공자의 이 학문을 잘 익혀서 오늘날 사법고시와 같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부귀공명이 보장되었던 조선 역사 오백 년 치세의 근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조선 역사의 근간인 공자의 유학은 얻기 어려운 보화보다 더 귀한 학문이었다. 그럼에도 유학은 무위가 아닌 규범이란 데에 문제가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인물 장자의 이야기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유약한 유학자였던 아버지가 전장에 나가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죽었다. 이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고 장자를 데리고 전장으로 가서 처참히 쌓인 수많은 주검을 온종일 뒤져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크게 통곡하고 장사를 지냈다.
장자의 어머니 역시 유학자의 집에서 태어나 예의범절과 요조숙녀로서의 몸가짐을 엄격하게 교육받고 자란 데다 천성으로 재능이 뛰어나고 학문도 깊었다. 그런데 남편을 장사 지낸 뒤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어느 날 야밤에 장자가 소변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는데 한 건장한 남자가 어머니의 방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직 소년이었던 장자가 호기심에 유심히 살펴보니 어머니의 방문이 살며시 열리고 그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와 어머니의 숨소리가 가쁘게 들려왔다. 분노를 참지 못한 장자는 가까이 다가가 방문을 왈칵 열었다. 놀란 어머니가 다급히 남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외쳤다. "이놈아, 예의도 없이 문을 열다니 이 나쁜 놈 차라리 나가 죽어라" 하고 악을 쓰며 뛰쳐나와 장자를 왈칵 밀어 쓰러뜨렸다. 장자는 쓰러진 채 눈물을 쏟았다.

그 후 몰래 찾아오던 남자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가 집 안 우물에 몸을 던졌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칭송하는 소리가 넘쳐났다, 절개를 지키려고 목숨을 끊었다며 열녀비까지 세웠다. 하지만 장자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인의의 허울을 쓴 어머니의 위선을 모르고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아까워하며 탄식을 금하지 않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백조는 씻지 않아도 희다. 하지만 검은 까마귀를 흰색으로 아름답게 꾸민다고 백조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예의범절이 바르고 지식과 지혜가 뛰어나고 선행을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이익을 위해서 혹은 출세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행은 이기적 속성의 발로이므로 위선자라 할 것이다.

위하기 위함을 유위라 하거니와 규범이 바로 유위이다. 따라서 법률은 인간의 속성을 옭아매는 올가미와 같다. 그러나 무위는 관습이므로 법이 필요 없다. 어떤 일을 행하든 도리에 어긋남이 없으므로 관습법이 유위법보다 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위(無爲)야말로 위선이 없는 진실이라 할 것이다.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