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12장

이처럼 번뇌는 오관이 자극을 받아 본성과 자아를 어지럽게 충동질해 번뇌가 물거품처럼 일었다가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번뇌가 본성과 자아를 어지럽히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져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 거기다가 성공과 실패를 바르게 성찰하지 못하고, 잘잘못을 현명하게 가리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툼에 휘말리는 등 삶을 평탄하게 유지하지 못해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다. 그 까닭은 혼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혼과 백은 본래 모태 속에 있을 때는 떨어지지 않고 하나로 붙어 있다. 그러기에 태아는 순진무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모태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온갖 물질세계의 기운을 받아 혼백이 둘로 갈라져 갖가지 번뇌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노자는 물었다. "정신인 혼(魂)과 오관인 백(魄)을 한 묶음으로 일치시킬 수 있느냐?"라고. 그리 물은 것도 번뇌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살기를 바라는 성자로서의 애틋한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을 육신에 집중해 마음이 육신을 벗어나지 않고, 육신이 마음을 떠나지 않게 하면 일체 번뇌가 여의어진다. 세속에 탐착한 번뇌가 사라지면 즉시 도의 세계가 환히 나타나 대도(大道)를 얻은 초월자가 된다. 그런데 노자는 어찌하여 "수행으로 혼백을 하나로 묶으면 깨달음에 이른 성인이 된다"라고 간단히 말하면 될 것을 "혼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느냐?"라고 물음표를 붙였을까? 그 까닭은 앞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넋의 정기 집합체인 오관이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고, 번뇌는 버리기 어려운 세속성에 탐착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속적인 번뇌를 여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전승돼 오는 도가 수행법(道家 修行法, 여러 가지 기공과 명상 등)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붓다의 호흡 명상법을 선호한다. 번뇌를 여의고 일심(一心)에 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보통 각오만으론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그러나 번뇌를 일으키는 오관의 작용을 읽어보면 도전해볼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오관의 오는 다섯 가지이자 오행이기도 하다. 오행은 천지 만물의 성질·성분·작용을 뜻한다. 그중에서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 오취(五臭), 오감(五感)이 오관이 받아들이는 번뇌의 대상이다. 오색은 아름다운 것만 보려는 눈을 유혹해 번뇌를 일으킨다. 특히 색깔은 진실한 마음을 빼앗는다. 우아하고 요염하거나 정열적이고 황홀한 분위기는 정염을 불태우는 번뇌가 자아를 상실케 한다. 더욱이 얻기 어려운 보석이나 귀한 물건의 색깔을 보면 탐욕이 맑은 이성을 덮친다. 특히 사냥으로 짐승을 죽이면 짐승의 붉은 피가 사람의 마음을 난폭하게 변화시킨다. 더 많은 짐승을 잡아 피를 보아야 만족하므로 어떤 번뇌보다도 더한 포악성이 점점 심해진다.
오음은 다섯 가지 음색이다. 아름다운 소리만 들으려는 귀를 유혹해 진실한 마음을 빼앗고 번뇌를 일으킨다. 슬픔, 분노, 증오, 유혹하는 소리, 사랑 등등 귀가 받아들이는 소리는 가지각색으로 번뇌를 일으킨다.
오미는 다섯 가지 혀의 유혹이다. 혀는 맛있는 것만 찾고 진실한 마음을 빼앗는다. 건강 면에서 맛은 대단히 중요하다. 쓴맛은 심장과 소장, 신맛은 간과 담, 짠맛은 신장과 방광, 매운맛은 폐와 대장과 통해 해당 장부를 돕는다. 심장·소장이 약한데 차고 짠맛을 즐기면 심장·소장이 병들고 눈물이 많은 번뇌를 조장한다. 간과 담이 약한데 매운맛을 즐기면 간·담이 병들고, 신경질과 분노가 심한 번뇌를 조장한다. 신장·방광이 약한데 단맛을 즐기면 신장·방광이 병들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색되고 빠져서 심한 번뇌에 시달린다. 폐·대장이 약한데 쓴맛을 즐기면 폐·대장이 병들고 우울증으로 인한 번뇌가 심하다.
오취는 다섯 가지 냄새다. 말할 것도 없이 악취는 온갖 번뇌로 괴롭힌다.
오감은 피부 감각인데 감각이 심하면 분노와 터무니없는 증오심에 잠을 못 이루고, 이성의 부드러운 쓰다듬음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게 한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