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에 대한 장비와 기술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SMIC가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시장 확보로 글로벌 선두 그룹에 합류했다고 13일(현지시각) 글로벌 기술매체인 크프텍이 보도했다.
SMIC의 이 같은 약진은 그동안 미국의 제재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터라 더 놀라움을 자아낸다. SMIC는 미국의 수출규제로 인해 최첨단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이 어려움을 딛고 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화웨이 신제품 Mate 70시리즈에 이 5나노 공정 칩이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7나노 공정을 사용해 화웨이의 기린 9000S 칩을 생산한 바 있다.
이에, SMIC는 중국 기업들의 주문이 늘면서 큰 수혜를 입었다. 집적회로, 이미지센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패널 등 다양한 부문에 주문이 쏟아지며, SMIC의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9.7%로 크게 늘었다.
SMIC는 지난달 1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이익 예상치를 하회하며, 연간 이익이 68.9% 감소한 712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분기 매출은 17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0% 성장하며 컨센서스 추정치 16억8,000만 달러를 상회했다.
업계 관계자는 “SMIC는 미국 제재로 최첨단 공정 개발에 어려움이 있지만, 28나노 이상 공정에서는 경쟁력이 있다”라며 “특히, 이미지센서, RF, 전력반도체 등 일부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SMIC가 EUV 장비가 없음에도 초미세 공정에 놀라운 성공을 보이는 것은 기존 DUV(심자외선) 노광 장비를 사용하되, 회로를 여러 번에 나누어 순차적으로 노광하는 ‘멀티패터닝’ 기술을 통해 7나노 공정 구현에 진전을 보였고, 화웨이와 공동으로 DUV 노광 작업을 4번 반복해 10나노 이하의 미세공정을 구현하는 SAQP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다만, 이는 불량률이 높고 생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지만, EUV 장비 없이도 7나노 선폭 구현이 가능해, EUV 장비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기술로 중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MIC의 부상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고 ‘탈동조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이에 적응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해 중국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SMIC의 3위 상승세가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스마트폰, 전장품목 등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창 중국의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전장용 반도체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여 SMIC 역할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SMIC의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UV 장비 부재로 7나노 이하 첨단공정 개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대중국 수출규제를 더욱 강화할 경우, SMIC가 반도체 핵심 장비와 원자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처럼, 중화권 파운드리 부상으로 글로벌 반도체 판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TSMC가 여전히 61.7%의 절대적인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만, SMIC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TSMC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이 중장기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파운드리의 존재감도 예전 같지 않다. 글로벌파운드리는 10나노 미만 선단 공정 개발을 중단하며 시장 점유율이 5.1%까지 내려갔다. 특히, 통신인프라와 데이터센터 등 일부 업체들은 더 작고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 칩을 요구하면서 주문을 취소하는 바람에 큰 타격을 받았다.
삼성전자 역시 점유율이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3나노 제품을 양산했지만, 대량생산 일정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성장이 주춤한 상태이다.
한편, 향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 부문의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경쟁도 더욱 과열될 전망이다. 향후, 파운드리 시장은 TSMC, 삼성전자, SMIC 3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SMIC는 EUV 장비 확보와 미국의 추가 제재 여부가 지속적인 성장의 관건이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