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인터넷의 대부분은 바닷속 해저 케이블을 통해 연결되며, 국가 기밀은 물론 기업 중요 정보도 이 케이블을 통해 전송된다. 해저 케이블은 인터넷, 금융 거래 등에 필수적이며, 경제와 안보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최근 중국국가안전부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업스트림(Upstream)’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해저 케이블에 대규모 감시를 수행해 왔다는 스노든의 폭로 10주년을 계기로 “해저 케이블은 일부 국가가 정보를 훔치고 심지어 지정학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가 됐다”라고 비난했다.
물론, 미국도 중국 정부와 화웨이가 케이블을 이용해 대규모 정보 유출을 노리고 있다며 연이어 비난 공세를 펴고 있다. 실제로 2018년 호주는 화웨이가 솔로몬 군도에 해저 케이블 건설을 지원하려 한 것을 차단했다. 2020년에는 구글 등이 중국과 합작으로 추진 중이던 8000마일 규모의 태평양 횡단 케이블 사업이 중국의 도청 위협을 이유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최근에는 중국 소유 SB 서브마린 시스템스 소유 선박인 푸하이, 푸타이, 볼드 매버릭 등 수리선들이 주기적으로 위성 추적 서비스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해 미국에서 스파이 의심 행적을 숨기려는 의도라고 주장한 바도 있다.
정보 유출과 도청 위협 외에도 해저 케이블은 고의적 물리적 훼손에도 취약해 국가 안보의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 러시아의 군사 정찰 고래 ‘벨루가’가 스웨덴 해군 관계자들에 의해 발견된 것도 러시아가 해저 케이블 공작을 노렸기 때문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정보가 국력인 시대에 주요 자료 전송 공간인 해저 통신 케이블이 새로운 국제적 긴장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 EU와 러시아 간 첨예한 지정학적 대립이 넓고 깊은 바닷속까지 뻗어나가면서,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은 불법 스파이 행위에 대해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 중국의 해저 케이블 영향력 확대
해저 케이블은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95%를 전송하는 핵심 인프라로,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로벌 경제 및 통신의 대동맥인 해저 케이블 총 연장 140만km가 전 세계 바다를 누비고 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비중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의 일환으로 해저 케이블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현재 전 세계 해저 케이블 공사의 약 10~15%를 중국 기업이 담당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이 지역 해저 케이블 대부분이 중국이 참여한 프로젝트로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반도를 포함한 전 지역 해저 통신에 중국 업체의 참여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는 중국이 해저 케이블을 활용한 정보 통제력이 강화되고, 지역 내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미국은 대부분의 해저 케이블이 결국 미국과 연결되고 있어, 중국의 해저 케이블 수리선이 케이블을 훼손하거나 도청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 한국의 해저 케이블 해킹 가능성
한국은 중국과 바로 인접해 있고, 해저 케이블을 통한 데이터 전송이 많아 항시 해킹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올해 2월에 대만 본섬과 마쭈다오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2개가 절단된 사건에서 보듯, 대만을 비롯한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해저 케이블 도청, 절단 사태에 언제든 노출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사이버 공격 위협도 상존해 해저 케이블에 대한 보안 강화는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술 경쟁력과 안전성 등을 고려했을 때, 정부와 기업이 향후 해저 케이블 사업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해저 케이블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 필요
해저 케이블 영역에서 군사안보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 규범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해저 케이블은 특정 국가의 영해를 벗어나 공해상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까지 유엔해양법협약이 유일한 국제 규범이지만 실효성에 한계가 있어 새로운 법적 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과 국가들이 참여하는 새 기구 신설을 통해 케이블 개수, 경로, 수리 등 제반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운영 과정에서 상호 감시와 견제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또 케이블 안전에 위협이 되는 해저 활동을 규제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해저 케이블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정보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한국도 국익과 국간 안보를 위해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함을 암시한다.
21세기 디지털 경제와 안보의 생명줄인 해저 케이블을 둘러싼 국제 공조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해저 케이블 보안 기술 개발, 국제 협력 강화, 사이버 안보 역량 강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