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인구 대국 중국이 심각한 인구절벽 위기에 직면했다.
노동력 감소로 인한 경제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한 자녀 정책 그림자와 최근의 경제난이 맞물려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된 한 자녀 정책이 남긴 트라우마가 현재의 저출산 문제를 가중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이 시기에 태어난 여성들이 겪은 차별과 소외 경험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자녀 정책의 그림자는 특히 농촌 지역에서 더욱 깊게 드리워졌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1991년에서 2009년 사이 농촌의 6~30세 여성 10명 중 4명이 남동생이 있었던 반면, 같은 연령대 남성은 10명 중 2명만이 남동생이 있었다. 이는 당시 성별 선호에 따른 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교육 기회 차별도 극심했다. 한 대학 연구팀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형제가 있는 여성의 평균 교육 기간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절반에 그쳤다. 많은 여성이 남동생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차별은 가정 내 자원 배분에서도 뚜렷했다. 딸들이 공립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들은 사립학교에 다녔고, 용돈도 몇 배나 더 받았다. 심지어 결혼 시에 아들에게만 주택 구입 자금과 자동차를 지원하는 등 차별이 이어졌다.
이런 경험을 한 세대가 결혼과 출산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여성들이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30~44세 미혼 여성 비율은 2000년 1% 미만에서 2020년 5.6%로 급증했다. 출생아 수는 2013년 약 1600만 명에서 2023년 900만 명으로 급감했다. UN은 중국 인구가 현재 14억 명에서 2100년에는 6억400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구조 변화의 배경에는 최근 심각한 경제난도 한몫하고 있다. 청년실업률 증가와 경기침체로 '탕핑(누워서 지내기)'이나 '바이바이(안 사도 죽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기)' 등 소극적 생활방식이 확산되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다수 중국의 20대 직장인은 '월급의 절반이 월세로 나가는 상황에서 결혼은 사치'라고 말한다. 높은 실업률로 많은 젊은이가 생존을 위해 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내일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결혼과 출산은 점점 더 멀어지는 꿈이 되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과 내수시장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용 증가는 재정 부담을 가중할 전망이다.
최신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2년 정점인 10.06억 명을 기록한 후 계속 줄어 2022년에는 9.75억 명까지 떨어졌다. 노동인구 감소 속도는 예상보다 빨라, 매년 약 500만 명씩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1% 감소는 GDP 성장률을 약 0.6%p 낮춘다. 또한, 소비 위축으로 인한 내수시장 침체도 이미 가시화되고 있어, 2023년 들어 소매판매 증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2년 14.9%를 기록했으며, 2035년에는 25%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연금과 의료비 지출은 2030년까지 GDP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여, 재정 건전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악순환이다. 줄어드는 노동인구로 인한 세수 감소, 늘어나는 고령 인구로 인한 사회보장 지출 증가, 재정적자 확대, 이는 다시 경제 성장 둔화로 이어져 청년 일자리 감소와 저출산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 2위 경제 중국의 성장 둔화는 글로벌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중국 정부가 최근 '가족 가치' 강조와 함께 출산장려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나, 실효성에는 의문이다.
2021년부터 '세 자녀 정책' 도입, 출산·육아 보조금 확대, 교육비 경감 등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2023년에는 주요 도시들이 신혼부부 대상 특별 주택공급 확대와 최대 10만 위안(약 1800만 원)의 결혼장려금 지원 등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효성은 미미하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약 67%가 "현재 지원 정책으로는 결혼과 출산 부담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단기 현금 지원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 더 시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산업구조 개혁 △대도시 주거비용 절감을 위한 실질적 대책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한 사회제도 개선 등이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단순한 인구정책을 넘어 중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인구절벽 문제는 단순한 인구정책의 차원을 넘어, 경제구조 전반의 혁신과 사회시스템 개혁이 요구되는 복합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향후 중국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