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 이후 과학기술 분야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DW 등 최근 주요 외신들은 미국 차기 행정부가 과학기술 수성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정부와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주도권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맥킨지 등 시장조사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AI와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분야는 약 5~7년, 양자컴퓨팅은 약 7~10년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성능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약 90%의 점유율을 보인다.
이런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보호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수출 관리에 이어, 차기 행정부는 AI, 양자컴퓨팅, 생명공학 등으로 관리 범위를 확대할 전망이다. 특히 군사 전용 가능 기술에 대한 관리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대학의 한 전문가는 이를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전략으로 설명했다. 이는 자국 내 핵심기술 개발 주체들을 보호하면서, 기술 유출을 차단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은 첨단기술 수출 제한, 해외 연구자 심사 강화, 기업의 해외 연구소 설립 제한 등 다층적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주요 투자은행은 이러한 변화로 향후 5년간 약 1조 달러 규모의 투자가 중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기술 규제 강화로 인해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내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투자를 축소하고, 이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첨단 제조업 분야의 생산기지 다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의 생산시설이 베트남, 인도 등으로 이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차이나 리스크' 해소를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재편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자체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AI 등 핵심 분야의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향후 5년간 약 1조4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 규제 이후 중국의 피해는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로 인해 중국의 AI 칩 수입이 2023년에만 전년 대비 약 80% 감소했으며,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 장비 도입도 크게 제한되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지난 2년간 약 1500억 달러를 자국 반도체 산업에 투자했으나, 핵심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3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생산은 사실상 아직 불가능한 상황이며, AI 반도체 설계 기술도 미국과 최소 5년 이상 격차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EU)은 미국과의 기술 협력 강화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EU는 최근 미국과 기술동맹을 통해 반도체, AI 등 핵심 분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독자적 기술 역량 확보도 추진하고 있어, 향후 미국과의 관계 설정이 주목된다.
구체적으로 EU는 '유럽 칩법'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현재 10%에서 20%로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으며, 이를 위해 약 430억 유로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AI 분야에서도 'AI 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하며 독자적인 규제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지나친 기술 의존도를 낮추려는 EU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로 해석된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EU 주요국들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어, 향후 미국과의 협력 수준을 어떻게 조절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글로벌 혁신 생태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의 한 연구자는 향후 5년이 글로벌 과학기술 지형 변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공동연구 축소, 기술 블록화, 공급망 재편 등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기술 경쟁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를 넘어 21세기 국제 질서 재편의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