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이 가시화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미국 내 로비 활동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 업체들도 대미 로비 강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3일(현지시각)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토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자동차 빅3는 트럼프의 첫 임기(2017~2020년) 동안 로비 지출을 오바마 행정부 시기 대비 평균 25% 증가시켰다. 이는 전체 산업 평균 증가율 8%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OpenSecrets)의 자료에 따르면, 토요타자동차의 경우 트럼프 첫 임기 동안 연평균 646만 달러를 로비에 지출했으며, 2019년에는 711만 달러로 20년 이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혼다 역시 이전 4년 대비 19% 증가한 연평균 326만 달러를 로비에 투자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도 로비 활동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GM은 2023년 1442만 달러를 로비에 지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테슬라도 전년 대비 47% 증가한 113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오픈시크릿은 밝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 업체들의 움직임이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 BYD는 2023년 로비 지출을 전년 대비 65% 증가한 104만 달러로 늘렸다. BYD는 2014년 처음으로 미국 로비에 진출한 이래 최대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일괄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혼다의 신지 아오야마 수석부사장은 "단기적으로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아울스 컨설팅그룹(Owls Consulting Group)의 케이스케 하뉴다 CEO는 "트럼프의 관세 강화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기업들은 예외 적용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로비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한 생존전략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는 ▲현지 생산 확대 ▲친환경 차 전환 가속화 ▲정책 대응력 강화 등 '3대 핵심 전략'을 중심으로 대응책을 수립하고 있다.
토요타자동차는 앨라배마 공장에 2억 달러를 추가 투자해 생산 능력을 연간 20만 대 확대하기로 했다. 혼다 역시 오하이오 공장 증설에 나섰다. 닛산도 테네시 공장의 전기차 생산라인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이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피하고자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특히 현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GM은 2035년까지 전 차종의 전동화를 선언했다. 포드도 2030년까지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만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테슬라는 보급형 전기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앤더슨 애널리스트는 "친환경차 전환은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이라며 "기업들은 이를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동차 업계는 워싱턴 로비 조직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GM은 전직 공화당 의원 출신 로비스트를 영입했고, 토요타는 법률 자문단을 2배로 늘렸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강화될수록 예외 적용을 받기 위한 로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아울스 컨설팅그룹의 케이스케 하뉴다 CEO는 전망했다.
현대·기아차도 미국 시장 대응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조지아 전기차 공장 건설을 서두르는 한편, IRA 대응을 위한 정책 소통도 확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부품업체들도 북미 진출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응 전략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공장 이전과 증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분간 불확실성이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완성차 업체들의 현지 생산 확대는 부품업체들의 동반 진출이 필요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부품업체들의 경우 자금과 인력 확보가 관건"이라며 "정부와 완성차 업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자동차 업계의 '3대 생존전략'은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비용 부담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