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산업이 전례 없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차량의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경제적 긴축까지 겹치며 산업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현재 미국의 도로를 달리는 경차는 약 2억9000만 대로 역대 최대 규모다. 차량의 평균 연령은 30년 전 8.4년에서 현재 13.6년으로 크게 늘었다. 차량 품질 향상으로 10만 마일 이상 주행이 일상화됐지만, 높은 물가와 금리로 인해 연간 자동차 판매량은 코로나19 이전 약 1770만 대에서 1550만 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소비자들의 차량 관리 패턴 변화다. WSJ 보도에 따르면, 타이어 체인 먼로는 저가 수입 타이어로의 소비자 이탈로 매출이 12% 급감했고, 나파 자동차 부품 매장의 주가는 실적 부진으로 하루 만에 5분의 1 이상 폭락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포드 익스플로러용 중국산 저가 타이어(149.99 달러, 보증기간 4만 마일)가 굿이어 타이어(254 달러, 보증기간 6만 마일)보다 낮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차량 정보 회사 카팩스는 미국 자동차의 30%가 타이어 교체를, 19%가 오일 교환을 지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시장 변화는 자동차 부품 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2007~2009년 금융위기 당시 주요 자동차 부품 체인들의 주가가 S&P500 지수 대비 강세를 보였듯이, 현재 정비 지연은 향후 대규모 교체 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자동차산업에는 더욱 큰 시사점을 준다. 현대·기아차는 고품질 부품으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왔으나, 이제 중저가 시장도 공략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현대모비스, 만도 등 주요 부품사들은 품질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전기차 전환 가속화는 정비 서비스 시장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움직이는 부품이 60% 이상 감소하며, 오일 교환 등 전통적 정비 수요가 줄어든다. 대신 배터리 관리, 전기모터 점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 부품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기존 내연기관차 부품 사업의 포트폴리오 조정과 함께 전기차 핵심 부품의 정비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
향후 미국의 정치적 변화도 주요 변수다. 보호무역 기조 강화는 수입 부품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시장 구조 변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함께, R&D 투자를 통한 기술 우위 확보가 필요하다. 특히 전기차 부품과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이런 변화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닌 구조적 전환을 시사한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이 향후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