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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AI 규제 프레임워크의 새 좌표 제시...'혁신과 안전 양립'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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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AI 규제 프레임워크의 새 좌표 제시...'혁신과 안전 양립' 추구

하원 AI 태스크포스, 부문별 전문규제로 글로벌 표준 제시...미·중 기술 패권 경쟁 전환점 예고

해질녘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해질녘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 모습. 사진=로이터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AI 시대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미국이 'AI 강국의 지위 유지'와 '안전한 AI 발전'이라는 두 가지 국가적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미 하원 AI 태스크포스가 지난 17일 발표한 273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기존 규제기관의 전문성을 활용한 부문별 접근을 통해 AI 혁신과 안전의 균형점을 찾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가 차원의 AI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면서도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스마트 규제’를 지향한다. 핵심은 FDA(식품의약국), NHTSA(도로교통안전국), FAA(연방항공국) 등 분야별 전문규제기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AI 규제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태스크포스는 "도구가 아닌 결과를 규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AI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고려한 유연한 규제 체계를 제안했다.

이러한 미국의 AI 규제 접근법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함의를 담고 있다. 기존 규제기관의 전문성을 활용한 부문별 접근은 AI를 독립된 기술이 아닌 각 산업에 적용되는 '도구'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즉, AI 자체를 규제하기보다 그 활용으로 인한 '결과'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료 분야에서는 AI 진단의 정확도와 환자 안전성이,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교통안전이 주요 규제 대상이 된다.

FDA, NHTSA, FAA 등 기존 규제기관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수십 년간 축적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산업의 특성과 잠재적 위험요소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 AI 기술 도입에 따른 새로운 도전과제들을 더 효과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다. 새로운 AI 전담 규제기관을 설립하는 대신 이러한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더욱이 이러한 유연한 규제 체계는 AI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에 발맞추면서도 기업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포괄적이고 경직된 규제 대신, 각 분야의 특성에 맞는 점진적 규제 조정은 기업들에게 예측 가능성과 적응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는 결국 미국이 AI 시대의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면서도, 안전하고 책임 있는 AI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전략적 비전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15개 핵심 분야에 걸쳐 66개 조사결과와 89개 권고사항을 제시한다. 주요 내용을 중요도 순으로 살펴보면, 최우선 과제로 국가안보 분야에서 AI를 핵심 구성요소로 규정하고 자율무기 정책에 대한 지속적 감독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의료 분야에서는 AI 의료기기의 시판 후 감시체계 강화를, 금융 분야에서는 혁신 촉진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제안했다. 또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교육 분야에서는 K-12 STEM 교육 강화를 통한 AI 인재 양성을,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에너지 분야에서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사용 효율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이 보고서가 트럼프 당선인의 기술전환팀 및 차기 AI 코디네이터와 협의를 거쳐 작성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 규제 기조가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 더욱이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유연한 규제 접근은 미국 기업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보고서의 영향력은 미국을 넘어 글로벌 AI 생태계 전반에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부문별 규제 프레임워크는 사실상의 글로벌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미국 기업들의 AI 투자와 혁신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자체 기술 개발을 강화하면서 러시아 등과의 기술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AI 정책과 산업계도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시급하다. 미중 양국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국내 AI 생태계 발전을 위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와 AI 칩 설계 분야에서 한국이 가진 경쟁우위를 활용하고, 의료·금융·자율주행 등 규제 산업에서 미국의 부문별 접근법을 벤치마킹하여 한국형 AI 규제 모델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산업계의 자율규제를 존중하면서도 AI 윤리와 안전성을 확보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요구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