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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만물과 사람은 근본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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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만물과 사람은 근본으로 돌아간다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16장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
명상 수행을 오래 하다 보면 보통 사람도 불가사의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붓다나 노자처럼 오래도록 깊은 삼매에 들기는 매우 어렵다. 완전한 삼매에 들면 어떤 번뇌도 침범하지 못한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으면 세속의 일이 수증기처럼 무수하고 미세해도 고요한 본성은 흔들림이 없어서 온 세상의 그 모든 것을 가만히 앉은 채 살펴볼 수 있다.

그러기에 노자는 지극히 텅 빈 마음으로 고요를 흔들림이 없이 굳게 지키면 만물이 한꺼번에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내가 만물을 거듭하여 관찰해보니 쑥쑥 잘 자라서 다시 제각기 근본으로 돌아가더라고 하였다. 노자가 말하는 근본은 만물을 태어나게 한 도의 곳을 일컫는다. 후일 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자세히 논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보통 돌아가셨다 하고 본능적으로 말하는 우리말의 의미가 대단히 철학적이다. 그런데 죽음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과 세속에 탐착해 일으키는 번뇌가 완전하게 사라지고 돌이켜 본성에 회귀하는 마음 작용이 다르지 않다. 명상으로 혼백을 일치시키면 세속에 매여 살아가는 번뇌의 온상 육신의 넋은 사라지고 청정해진 마음이 흔들림이 없는 본성에 회귀하여 고요를 지키는 것이 바로 도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노자는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근본으로 돌아감을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은 본성으로 돌아옴을 아는 것이니 이를 밝음이라 한다. 사람이 본성으로 돌아옴을 알지 못하면 망령되게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사람이 일상에서 본성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세속의 일에만 얽매여 탐욕에 찌든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재앙이라는 뜻이다. 천하 영웅이건 위대한 성자이건 걸식하는 거지건 온갖 죄지은 자이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을, 한세상 부귀와 명성이 드높다 해도 사라지는 연기에 다름이 아닌 만큼 재앙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노자는 또 한 번 도의 위대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고 13장을 끝맺었다.
도를 알고 받아들이면 사사로움이 없이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함은 왕이 할 바이며, 왕은 하늘이고 하늘이 곧 도이며 도는 영원함이니 혼백이 없어질 때까지 오래오래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다. 도는 천지 만물 온갖 것들을 차별하는 법이 없다. 온 누리에 빠짐없이 골고루 퍼져나가 물처럼 바람처럼 위해준다. 귀하고 천하고 신분이 낮고 높고 성자건 중생이건 영웅이건 필부건 착하건 악하건 예쁘건 흉하건 더럽건 깨끗하건 가리지 않고 위해준다. 치우침이 없이 낳고 숨 쉬게 하고 먹이고 길러주는 덕을 무한히 베풀기만 한다. 그러므로 사사로움이 없다.

도가 그러하듯 모름지기 왕과 지도자도 제 욕심을 버리고 일체중생을 위함이 마땅하다. 일체 중생을 위하는 것이 곧 하늘이 내리는 덕이며 도인 것이다. 하늘의 덕은 몸이 죽어 없어질 때까지 아니 혼백이 없어질 때까지 위태롭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사람이 득도하여 진정한 도인의 반열에 올라 유유자적하는 이상적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평생 꽃을 피우는 봄바람처럼, 만물을 자양해주는 골짜기 물처럼 덕만을 베풀고 살다가 늙어 힘없을 때 조용히 물러나 남을 생을 영위하다 소리소문 없이 세상을 등지고 근본으로 돌아간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1960년대 중학 시절 들은 실화다.

당시 내 고향에는 나병환자가 많았다. 코가 뭉그러지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떨어져 나간 그들을 문둥이라고 불렀다. 매일 걸식으로 연명하던 아무도 찾지 않는 그들 마을에 어느 날 50대 한 여인이 나타났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녀는 그들 마을에 정착해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문둥병은 감염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더러운 그들 몸을 씻기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도 하고 그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삶을 10여 년 살았다. 그리고 몸이 성치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다. 한 여인의 짧은 인생이지만 자취도 남기지 않은 그녀야말로 근본 도의 곳으로 돌아가 성인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의 무위 행은 살다가 회귀한 도의 곳에서 영원한 복덕을 지금도 누리고 있지 않을까?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