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보인다. 우선, 많은 은행이 탄소 배출이 많은 핵심 부문에 대한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거나, 설정했더라도 그 목표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설정 목표조차도 지구 온난화를 1.5도로 제한하는 데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WRI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부문에서 은행들의 평균적인 배출량 감축 노력은 1.5도 상승 경로에 맞춰지지 않았으며, 2030년에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은행들이 실제 이행은 물론, 필요 수준의 배출량 감축 계획조차 정확하게 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녹색 금융 확대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청정에너지와 화석연료 투자 비율이 10:1에 도달해야 한다고 전망했지만, 현재 은행들의 녹색금융과 화석연료 금융의 비율은 평균 1.3:1에 불과하다. 이는 넷제로 달성에 필요한 속도와 규모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은행은 자금 조달의 힘을 통해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미진한 이행 수준은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협하고, 기후 위기 대응에 필요한 자본 동원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이는 또한, 에너지 경제의 전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청정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은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하며, 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청정 운송 등의 분야에서 필요한 투자가 적시에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와 투자자에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글로벌 금융 흐름의 변화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과 투자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 위주의 에너지 집약적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 특성상, 글로벌 금융의 넷제로 이행 속도는 한국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넷제로 노력도 진전을 보이지만, 글로벌 기준 대비 여전히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2020년 10월 정부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이후, 금융권과 기업들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으나 실질적인 이행은 기대치에 부족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ESG 채권 발행 규모는 86조 원으로 전년 대비 19.4% 증가했으나, 이는 전체 채권 발행액의 10.5%에 그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기업들은 넷제로 이행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 정부는 녹색금융 확대 제도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들의 탄소중립 목표 설정과 이행을 촉진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과학기반감축목표 수립을 의무화하고, ESG 정보 공시 기준도 보강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기업들도 저탄소 경제 전환에 필요한 투자를 선제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 집약적 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기업들의 적극적인 탈탄소화 노력이 필수적이다.
금융기관들 역시 더욱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ESG 투자 및 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고탄소 산업에 대한 투자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녹색산업 자금 공급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제 이니셔티브 참여를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넷제로 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올 11월 미국 대선 결과, 기후변화에 관심이 큰 해리스 후보 진영이 당선할 경우, 넷제로 등 기후변화에 대한 정책 강도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넷제로 이행에 더욱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은행의 넷제로 약속과 실제 이행 사이의 괴리는 글로벌 기후 대응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은행들의 더욱 진정성 있는 노력과 함께, 정부와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압박이 필요할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 부문은 이제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은행들은 자금 흐름을 통해 경제 전반의 탈탄소화를 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은행들의 넷제로 약속 이행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 과제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