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닛케이는 일본 정부가 이스즈 자동차, 소지쓰 등 15개 기업에 350억 엔 규모 보조금을 지원해 ASEAN 내 공급망 구축을 도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반도체·자동차·에너지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일본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은 ASEAN 지역 공급망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미쓰이 전기의 칩 패키징 생산라인을 지원하고, 베트남에서는 도쿠야마의 다결정 실리콘 제조 사업을 보조할 계획이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일본은 ASEAN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스즈와 미쓰비시는 태국에서 배터리 교체형 전기차 및 배터리 교환소 도입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가는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이 전략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우선 국제통화기금(IMF)의 2024년 1월 전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일본의 GDP는 4.43조 달러로 추정되는 반면, 중국의 GDP는 17.7조 달러 정도다. 이는 일본과 중국 간 경제 규모 격차가 상당함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ASEAN 지역에 대한 일본의 직접 투자액은 약 1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 투자액은 정확한 수치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중국 상무부는 2023년 전체 해외 직접 투자액이 전년 대비 17.4%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2년 9월까지 중국의 ASEAN 투자액이 약 138억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23년 9월까지의 투자액은 약 162억 달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추정치는 일본의 179억 달러에 근접한 수준으로, 중국의 ASEAN 지역 투자가 일본과 비슷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계속 가격 경쟁력과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과감한 동남아 진출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사례로,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은 2023년 말 인도네시아에 추가로 5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는 일본 정부의 최근 지원 규모를 여전히 크게 웃돈다.
한편, 일본의 이 전략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은 '신남방정책 플러스'를 통해 ASEAN 지역과의 협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직접투자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ASEAN 투자액은 약 83억 달러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으며 꾸준한 상승세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초까지 한국 기업들의 ASEAN 대규모 투자 계획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베트남 북부 타이응우옌성에 3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연구개발(R&D)센터 설립을 발표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에 약 20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생산시설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투자 확대는 동남아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ASEAN 통계국(ASEANstats)의 가장 최신 공식 발표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ASEAN의 주요 교역 파트너 중 중국이 1위(18.7%), 일본이 4위(7.0%), 한국이 5위(5.9%)를 차지했다.
베트남 통계청(GSO)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의 전자제품 및 부품 수출에서 한국과 중국이 주요 시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확한 점유율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태국 자동차산업협회(TAI)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23년 태국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성장이 두드러졌고, 인도네시아 자동차제조업협회(Gaikindo) 2023년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브랜드가 여전히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이 증가 추세에 있다.
이를 보면, 동남아 시장에서 중국·일본·한국 간 경쟁은 진행형이며, 특히 자동차와 전자제품 분야에서 각국의 영향력 확대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SEAN 국가들에는 이런 경쟁이 경제적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미·중 갈등의 심화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변화를 주시하며, 균형 잡힌 외교 전략과 함께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기술 혁신과 현지화 전략을 통해 ASEAN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상호 이익을 위한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