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쏟아부은 대규모 투자가 태양광 산업의 부흥으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현상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美 정부는 2022년 8월 반도체 및 과학 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520억 달러의 투자를 단행한 지 2년,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RMI와 브루킹스연구소가 개발한 클린 그로스 툴(Clean Growth Tool) 분석 결과,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들이 미국의 태양광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이 확인됐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태양전지 자체가 반도체이기 때문에 두 산업은 유사한 인력과 원자재,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발표된 태양광 제조 투자의 53%와 반도체 투자의 70%가 태양광 부품 제조 타당성 상위 20%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면, 보이시·피닉스·포틀랜드 등 반도체 가공 기술자 밀집도가 높은 지역들이 주요 반도체 제조 투자를 유치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도체와 태양전지는 기술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둘 다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물질을 사용하며, 제조 공정에서도 많은 유사점을 공유한다. 웨이퍼 제조, 도핑, 식각, 증착 등의 과정이 두 산업에서 모두 중요하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반도체 첨단 기술과 장비가 태양전지 제조에도 직접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의 정밀 레이저 기술이 태양전지 빛 흡수율을 높이는 데 사용되거나, 플라스마 증착 기술이 반사 방지 코팅에도 활용되어 효율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
이런 지리적 중첩은 시너지 효과를 낳을 전망이다. 첨단 반도체 공장 인근 지역에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면 기술 교류를 더욱 촉진하며, 인력 교류를 통한 새로운 혁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효율성과 성능을 높이는 혁신과 산업 장비들을 공유할 수 있으며, 과거 반도체 산업 제조 장비가 태양전지 효율을 두 배로 향상한 사례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두 산업 동반 성장과 기술 발전을 가속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이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글로벌 태양광 및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 중국이 독점하다시피 한 태양광 제조 분야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혁신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반도체와 태양광 융합은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효율적 칩이나 고성능 태양전지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사례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정책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경기도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에는 태양광 기업의 입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태양광 기업을 유치하는 방안의 타당성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반도체와 태양광 산업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한국 첨단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한국의 반도체·태양광 기업에 미국의 변화는 기회이자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기술력과 자본이 결합한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은 분명 위협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내 새로운 생산기지 구축과 연구개발(R&D) 협력의 기회도 열릴 수 있다. 특히 한국 기업의 축적된 기술력과 노하우가 미국 자본·인프라와 결합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런 산업지형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들의 실적 개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반도체-태양광 융합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만, 정부 정책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정치적 리스크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전략은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 기술 패권 경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반도체와 태양광이라는 핵심 기술을 동시에 육성함으로써 첨단 제조업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반도체-소프트웨어 혁명, 매사추세츠의 생명공학 붐과 같은 역사적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보고서는 산업 정책의 중요성과 예상치 못한 혁신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정부의 전략적 투자가 어떻게 산업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글로벌 시장과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