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관리회사인 반에크는 최근 반도체 시장을 조명하면서 팹리스 기업들이 AI 붐과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엔비디아는 AI 붐을 타고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최고 반도체 기업 인텔을 제치고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대두했다.
애플도 자체 설계한 M시리즈 칩으로 PC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기업의 성공은 팹리스 모델의 강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팹리스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자본 효율성과 민첩성에 있다. 수십억 달러가 소요되는 제조 설비 투자 부담에서 벗어나 연구개발(R&D)과 설계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반에크의 조사 결과는 팹리스 기업들의 누적 실적이 반도체 산업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엔비디아의 영업이익률은 최근 40%를 넘는데, 이는 종합반도체 기업들의 평균인 20~30%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주요 팹리스 기업들의 2019~2023년 연평균 매출성장률은 약 25%로, 같은 기간 반도체 산업의 평균인 15%를 크게 넘었다. 주가 성과 역시 팹리스 기업들이 우수했는데, 같은 기간 팹리스 기업들의 주가상승률 평균은 약 300%로, 반도체 산업 전체 평균인 150%의 두 배에 달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팹리스 기업들의 우수한 실적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AI, 자율주행, 5G 등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분야에서 팹리스 기업의 기술력이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에크의 예측에 따르면, 2025년까지 팹리스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현재 30%에서 40%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런 변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종합반도체 기업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메모리 중심 사업 구조에서 탈피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동시에 팹리스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첨단 공정 기술을 고도화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을 더 확대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미 엑시노스 시리즈를 통해 모바일 AP 시장에 진출했지만, AI 특화 칩 개발에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평이다. 따라서 AI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 R&D 투자와 인재 영입이 필요하다. 엔비디아·구글 등 선도 기업 출신의 AI 반도체 설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여 기술력을 높이는 것도 검토해볼 만한 일이다.
이외에도 국내외 유망 팹리스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면, AI 스타트업과 공동으로 특화 칩을 개발하거나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팹리스 생태계 조성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자사의 벤처캐피털 조직을 통해 유망한 국내외 AI 반도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 재무적 투자를 넘어 이들 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장 기회를 발굴하는 전략적 투자가 확대되어야 한다.
향후 AI 칩은 고성능·저전력이 핵심이므로, 이에 특화된 공정 기술을 개발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면, 3D 적층 기술을 활용한 고성능 AI칩 제조 공정이나, 뉴로모픽 컴퓨팅에 최적화된 특수 공정 개발 속도를 더 높여야 할 것이다.
한편, 투자자들에게 팹리스 기업들의 약진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에크가 최근 출시한 '미국 상장 팹리스 반도체 ETF(SMHX)'는 엔비디아·퀄컴·AMD 등 주요 팹리스 기업들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할 때, 팹리스 기업 투자는 장기적으로 매력적인 옵션이 될 수 있다.
팹리스 기업의 급부상은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제조와 설계 분업화가 심화하면서 전문성과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설계기술 중요성이 커지면서 소프트웨어와의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반도체를 넘어 전체 ICT 생태계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