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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냉장고 자유법’ 논란, 환경정책과 가전산업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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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냉장고 자유법’ 논란, 환경정책과 가전산업의 충돌

“에너지 효율 규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한국 가전기업에도 영향”

환경과 산업의 충돌, 의회는 어떻게 결정할까.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환경과 산업의 충돌, 의회는 어떻게 결정할까. 사진=로이터
그간 환경운동가들은 기후변화에 맞서 다양한 전선에서 싸워왔다.

화석연료 사용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 배출 규제 등 거시 정책부터 일상생활의 작은 변화까지 그들의 노력은 점진적이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는 의외의 영역, 바로 가전제품 효율성 규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논쟁이 불거졌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이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겪는 진통을 보여주는 동시에 환경정책이 정치적 갈등의 새로운 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23일(현지시각) 환경운동가 모임인 더 히티드가 보도했다.

논쟁 중심에는 ‘냉장고 자유법’이 있다.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안은 바이든 행정부가 제안한 가전제품 효율성 규제를 폐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표면적으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더 복잡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환경 규제에 반대하는 보수층 지지를 얻고 화석연료 산업 등 에너지 효율 규제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산업의 이익을 대변할 요량으로 이 법안을 제출했다.

환경운동가들은 가전제품 효율성 규제가 에너지 절약과 탄소 배출 감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에너지부의 추산에 따르면, 이러한 규제를 통해 미국 가정은 연간 35억 달러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더불어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어 기후변화 대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공화당과 일부 산업계는 이러한 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제품의 성능을 저하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들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시장을 왜곡하고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화석연료 산업은 이런 규제가 자신들의 이익을 직접 위협한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냉각 성능을 떨어뜨리거나 내구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규제를 충족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 제품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 수 있으며, 규제 준수에 따른 비용 증가가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규제가 미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는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 내 일자리 감소와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논쟁은 단순히 가전제품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부 정책 범위와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를 반영한다. 환경운동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반대편에서는 시장 주도의 해결책을 선호한다.

이러한 논쟁의 한가운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가전기업들의 입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중심으로 한 한국 기업들은 북미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냉장고·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 분야에서 20~30%의 시장 점유율을 보여, 미국의 정책 변화는 이들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행히 한국 기업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갖춘 제품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규제 강화에 따른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이런 규제가 유지될 경우, 친환경 기술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온 한국 기업에 경쟁력 강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냉장고 자유법’과 같은 규제 완화 움직임은 이들 기업의 전략 수정을 요구할 수 있어 미국의 정책 동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논쟁이 정치적 양극화의 새로운 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초당적 지지를 받던 에너지 효율성 정책이 이제는 첨예한 정치적 갈등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기후변화 문제가 단순한 환경 이슈를 넘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갈등은 미국 경제와 관련 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효율성 규제의 유지 또는 폐지 여부에 따라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의 전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에너지 산업 전반에 걸쳐 투자 방향과 기술 혁신의 초점이 바뀔 수 있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이 논쟁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이 얼마나 세밀하고 광범위해졌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정책들이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더 많은 이해관계자를 끌어들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냉장고 자유법’은 환경보호와 경제적 이해관계, 정부 규제와 시장 자유, 그리고 과학적 합리성과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으로, 이 논쟁의 결과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후변화 정책 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