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블록화가 심화되고,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ASEAN)이 브릭스(BRICS) 가입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세안은 다양한 정치 체제와 문화를 가진 국가들이 모여 50년간 평화와 번영을 이뤄낸 성공적인 지역 협력체다. 이는 다양성 속에서도 공존과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키쇼어 마부바니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은 "성공적인 지정학은 평화를 가져오지만, 잘못 조종된 지정학은 전쟁을 초래한다"며 아세안의 평화로운 공존 모델이 브릭스의 안정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아세안은 베트남 전쟁 이후 50년간 평화를 유지하며 연평균 5~8%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두 차례의 큰 갈등을 겪으며 1.6% 성장에 그친 유럽과 대조적이다.
아세안은 브릭스의 성장하는 상품 거래소를 통해 경제 성장과 식량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브릭스 거래소는 상품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여 아세안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브릭스는 원자재 및 부가가치 상품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새로운 상품 슈퍼 사이클에서 아세안에게 큰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전기차, 리튬 배터리, 핵 에너지,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브릭스와의 협력은 아세안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브릭스는 블록체인과 같은 대체 금융 플랫폼도 제공한다. 아세안은 이를 통해 미국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최근 농산물 가격 변동성 확대와 금 가격 상승은 미국 달러 중심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아세안은 다극화된 금융 시스템을 통해 경제 주권을 강화하고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특히 결제 통화를 금과 같은 중립적 준비 자산에 연결함으로써 미국 달러 변동성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아세안이 더 이상 수동적인 중립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능동적으로 다극화 시대에 참여하고, 브릭스와의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세안의 경험과 중립성은 브릭스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아세안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아세안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다른 국가들이 아세안의 정치 경제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통해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세안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일부 아세안 회원국들은 브릭스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올해 브릭스 의장국인 러시아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다른 회원국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세안 내부에서는 브릭스 가입에 대한 찬반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찬성 측은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강조하는 반면, 반대 측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세계 경제 블록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아세안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브릭스 가입을 통해 다극화 시대를 주도하고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중립 노선을 유지하며 변화하는 국제 질서에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아세안의 선택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들의 미래는 이 선택에 달려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