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최근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핵보유국 지위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기존 '비핵화' 전제 협상 구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는 미국 차기 행정부가 직면할 북핵 문제의 본질이 '비핵화'에서 ‘핵 능력 관리’로 급격히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30년간의 미-북 핵 외교 실패로 인해 미국 관리들은 북한과 핵 협상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2019년 이후 워싱턴과 평양 간 외교 단절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하였다.
◇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북 접근법 비교
트럼프의 '톱다운' 개인 외교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 채널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실질적 비핵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해리스의 동맹 중심 접근법은 대북 압박을 강화할 수 있지만, 북한의 고립과 도발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
트럼프는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직접 만남을 이뤄 수십 년간 계속된 북미 간 적대적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오히려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고 핵 능력을 계속 강화했다. ‘톱다운’ 방식이 복잡한 비핵화 협상의 세부 사항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정상 간 직접 소통에 치중한 나머지, 실무선에서 구체적이고 지속적 협상이 부족했고, 이로 인해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원칙들이 구체적인 이행 단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또한, 트럼프의 개인 외교는 때로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의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진행되어, 역내 안보협력 체제에 혼선을 빚기도 했다. 개인 외교 특성상, 정권 교체 시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점도 중요한 한계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의 대북 접근법은 더 강화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김정은과의 직접 소통을 더욱 활발히 추진할 것이다. 이는 3차, 4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심지어 김정은의 미국 방문이나 트럼프의 평양 방문 같은 파격적인 이벤트도 가능할 수 있다.
또한, 비핵화에 대한 단계적, 동시적 접근이 시도될 수 있다. 트럼프는 첫 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즉각 요구하기보다는 북한의 부분적 비핵화 조치에 대해 제재 완화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한미동맹 재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 증액을 더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한미 간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 한미동맹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트럼프의 발언들로 인해, 2기 정부에서는 한미동맹의 균열 및 와해마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욱이, 중국을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 변수로 보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미중 갈등 심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들의 전략적 딜레마를 가중할 수 있다.
한편, 북한 인권 문제나 체제 보장 등 비핵화 이외 이슈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견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북미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이나 지역 안보 구도 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해리스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폭군과 독재자에게 아첨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발언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시사한다. 특히 한국을 언급하며 "우리는 절대 우리 동맹들에게 보호 비용을 내라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민주당의 전통적 외교 노선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대북 압박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리스 행정부는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과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통해 비핵화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의 경제적 고립을 심화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더욱 강경한 대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민주당 정강 정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조건부 관여' 정책의 가능성이다. 이는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대화와 협상의 문을 열어두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해리스 행정부는 또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도덕적 차원에서 중요한 접근이지만, 북한 정권을 더 방어적으로 만들어 대화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해리스와 민주당은 다자간 협력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의 협조를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각국의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정책 이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해리스와 민주당의 대북 정책은 원칙과 가치를 중시하는 접근법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동맹국들과의 관계 강화와 국제 규범 준수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북한과의 실질적인 대화와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두 접근법의 효과성은 북한의 반응과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접근법을 선택하든 그것이 글로벌 핵 비확산 체제에 미칠 영향이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실질적 비핵화 없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국제 핵 통제 체제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 미중 관계와 북한 문제
차기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더 큰 지정학적 맥락, 특히 미중 관계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의 입장은 더욱 곤혹스러워질 수 있으며, 미국은 대중국 정책에 있어 한국에게 명확한 입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북한-러시아 군사 동맹이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과 공통점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 학자 패트리샤 킴에 따르면, 베이징은 모스크바에 비해 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빠르게 잃고 있으며, 그동안 두 개의 외딴 국가와 연관되는 외교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는 차기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러시아로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적어도 중국이 러시아-북한 협력을 더 가능하게 하지 못하도록 막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 한국의 대응 전략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첫째, 박빙 구도에서 두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양당 인사들과 의사소통을 강화하여 대화 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북핵 해법과 북미관계 개선, 한미관계에 관한 로드맵을 먼저 마련하여 차기 미국 정부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차기 미국 정부의 아젠다 중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에 놓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은 안보협력 체제 다변화, 다중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최근 논의된 오커스(AUKUS)의 필러2 참여나 AP4(아시아태평양 4개국)의 일원으로서 나토정상회의 참가 등은 안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좋은 예이다.
차기 미 대통령의 대북 정책과 김정은과의 회담 여부는 한반도 안보와 세계 핵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은 미국이 북한과의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적극적으로 국익과 안보를 대변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주도할 수 있는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다변화된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한국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외교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