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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출산율 저하..."자발적 멸종의 길 걷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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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출산율 저하..."자발적 멸종의 길 걷는 듯"

선진국 인구 위기, 경제적 혜택으로 해결 불가능
문화적 변화가 해답 암시

주요 선진국들의 출산율 하락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주요 선진국들의 출산율 하락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사진=로이터
선진국의 인구절벽 문제가 새삼 그 심각성을 높여가고 있다.

13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기사는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현상을 조명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가장 풍요롭고 안전한 시대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자발적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인구 감소를 넘어, 문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2000년대 이후 선진국 출산율 저하는 이제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UN 인구 통계에 따르면, 미국, 헝가리, 노르웨이, 유럽 등 주요 선진국 합계 출산율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0년 기준 대부분 1.5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곧 '아이 없는 사회'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WSJ는 이 현상을 "풍요 속의 빈곤"이라 표현했다. 경제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미래 세대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잃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사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EU 27개국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1년 20.8%에서 2100년 31.3%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같은 기간 64.1%에서 54.8%로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연금 시스템의 붕괴, 노동력 부족, 혁신 동력 상실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위기를 예고하는 것이다.

일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9.1%에 달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1995년 8,726만 명을 정점으로 2021년 7,484만 명으로 급감했다.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연간 GDP 성장률이 0.5%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사라지는 일본'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역시 이 문제에 고통받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2034년부터 65세 이상 인구가 18세 미만 인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화다.

WSJ에 따르면, 각국 정부는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파격적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헝가리는 아이를 낳으면 약 2억 원(15만 달러) 이상의 저리 대출, 보조금을 받는 미니밴, 평생 소득세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노르웨이는 1년간 유급 육아 휴직, 보육 보조금 등을 통해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저하 추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헝가리의 출산율은 2021년 1.6명으로 소폭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고, 노르웨이 역시 2009년 2명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현재 1.4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선 근본적인 문화적 변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WSJ가 인터뷰한 부다페스트의 28세 오르솔리아 코치스의 말은 이 세대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집을 사기 위해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옳지 않다"는 그녀의 발언은 경제적 보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한국의 상황은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의 최첨단에 서 있다. 2022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3,736만 명에서 2070년 1,746만 명으로 53.3%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사회의 존속 가능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WSJ의 이번 보도는 저출산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 혜택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현대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며,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