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석유시장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고 중국 수요 둔화가 계속되자 국제유가는 배럴당 74달러 선까지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석유 산업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고 21일(현지 시각) 배런스에서 보도했다.
실제 미국 석유 서비스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잇달아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서비스 기업 SLB는 2025년 북미 지역의 석유 시추 활동이 정체되거나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리서치 기관 튜더 피커링 홀트는 원유시장 약세로 인해 4분기 미국의 석유 시추 활동이 두 자릿수 감소를 보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대표적인 석유 서비스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리버티는 실적 발표 후 8.9% 하락했으며, SLB 역시 4.7%의 주가 하락을 기록했다. SLB의 올리비에 르 푀흐 CEO는 투자자들과의 컨퍼런스 콜에서 "단기적으로 미국의 석유 시추 활동이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가스정 시추 증가가 있더라도 운영 효율성 향상으로 인한 석유 시추공의 추가 감소로 상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미국 석유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준다. 생산자들은 기술 혁신을 통해 기존 유정에서 더 많은 석유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신규 시추의 필요성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5년 생산량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2023년의 7.9% 증가율과 비교할 때 현저한 둔화세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현재의 시장 상황이 단기적 변동이 아닌 장기적 추세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리버티는 현재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대형 서비스 기업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는데, 이는 규모가 작은 경쟁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발생하는 구조조정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SLB 역시 디지털 서비스 확대와 천연가스, 해양 석유 시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분야로의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석유 서비스 산업이 이미 새로운 게임의 법칙에 적응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미국 최대 시추 서비스 업체인 핼리버튼의 실적 발표가 예정되어 있어, 업계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더욱 명확한 그림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생산 둔화 전망이 정치적 불확실성과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 주자들이 석유 생산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는 정책적 지원만으로 생산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미국 석유 산업이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닌 구조적 전환기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석유 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예고한다. 미국의 생산 증가세 둔화는 OPEC+의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중국을 비롯한 주요 소비국의 수요가 약세를 보여 당분간 유가의 상방 압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적으로는 더욱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 주요 산유 지역들은 이미 '피크 오일' 시대를 대비한 경제 다각화에 착수했다. 텍사스와 뉴멕시코 등 주요 석유 생산지들은 첨단산업 유치와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전환 움직임은 글로벌 기후 변화 대응 기조와 맞물려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EIA는 2024년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1,320만 배럴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는 미국 셰일 혁명의 정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변화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참여자의 새로운 전략 수립을 요구한다. 석유 서비스 기업들은 이미 디지털화와 효율성 제고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섰으며, 주요 산유국들은 경제구조 다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소비국들 역시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두 가지 과제의 균형점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석유 산업의 구조적 전환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산업의 부침을 넘어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대응, 경제구조 재편이라는 복합적 과제의 해법을 요구하는 중대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