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을 위한 야심찬 행보에 나섰다.
중국발 공급망 충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겪은 EU는 전략물자 확보를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900만 유로 규모의 핵심광물 공동구매 플랫폼 구축이 그 중심에 있다고 21일(현지 시각) 로이터가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심화하는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흔들리는 유럽의 자원안보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풍력발전에 필수적인 희토류 등 핵심광물의 對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EU는 이 플랫폼을 통해 개별 기업들의 구매력을 결집해 협상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의 안정적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은 일부 엇갈린다. 독일 자동차산업협회(VDA)는 이미 견고한 공급망을 구축한 대기업들의 참여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요구하는 특수 등급의 원자재 조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광물과 에너지를 동일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유럽 감사원은 이미 가스 공동구매 플랫폼의 효율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또한,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업들의 영업 비밀 노출 우려도 현실적 과제다.
이러한 EU의 움직임은 글로벌 자원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은 자국이 주도해온 핵심 광물 시장의 영향력이 약화할 것을 우려하며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호주, 칠레 등 자원 부국들은 EU의 공동구매 체제가 가격 협상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세계 최대 배터리 생산국이자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핵심 광물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EU의 이번 시도는 한국이 검토해볼 만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다만, 한국의 경우 EU보다 시장 규모가 작은 만큼, 역내 다른 국가들과의 연대나 민관 협력 강화 등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EU의 이번 시도가 단기적으로는 시장 참여자들의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과제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미국의 IRA와 맞물려 글로벌 자원 시장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EU의 핵심 광물 공동구매 플랫폼은 단순한 거래 시스템 구축을 넘어,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유럽의 야심찬 도전으로 해석된다. 이 플랫폼의 성공 여부는 향후 글로벌 자원 시장 판도 변화를 가늠할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