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SVOLT가 유럽 사업을 중단한다. 유럽연합(EU)의 무역 규제 강화 및 전기차 판매 부진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글로벌 확장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이라며 25일(현지시각) 닛케이가 보도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SVOLT는 60억 유로(약 8조6000억 원) 규모의 독일 공장 건설 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유럽 사업에서 철수한다. 이는 2021년 발표했던 독일 자를란트주 투자 계획을 2년 만에 포기하는 것으로, 연간 24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 확충 구상이 무산된 것이다.
이 회사는 내년 1월까지 유럽 사업부 및 독일 자회사 운영을 종료하고 약 400명의 직원 해고를 단행할 예정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SVOLT는 2023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3.2%의 점유율로 8위를 기록했으나, 유럽 시장에서는 1% 미만의 저조한 실적을 보여왔다.
이번 철수 결정의 배경에는 EU의 대중국 무역 규제 강화가 있다.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고, 배터리 원자재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Net-Zero Industry Act'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유럽의 전기차 수요 둔화도 영향을 미쳤다. 블룸버그NEF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유럽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전년 대비 30%에서 15%로 둔화됐다.
SVOLT만이 아니다.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 CATL은 헝가리 공장 투자 규모를 당초 79억 유로에서 63억 유로로 축소했고, 자동차 제조사 Great Wall Motor는 독일 R&D 센터를 폐쇄했다. 중국 기업들의 유럽 투자 철회는 2023년에만 총 150억 유로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중국 기업의 유럽 시장 철수는 한국 배터리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기업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합산 25%로, CATL(31%)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이미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에서 연간 70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했고, SK온은 헝가리에서 30GWh 규모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40GWh 규모의 제2공장도 건설 중이다.
전문가들은 "EU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기술력과 품질에서 검증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다만 미국의 IRA와 같은 보조금 정책이 없는 유럽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정부도 배터리 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발표한 'K-배터리 발전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최대 100조 원 규모의 금융 지원과 R&D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개발과 리튬 등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