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글로벌 석유시장 지배력이 급속히 약화되면서 세계 에너지 질서가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각)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급증과 OPEC+ 내부 균열로 인해 사우디의 유가 통제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1조 달러 규모의 경제 다각화 프로젝트와 2030년 월드엑스포, 2034년 FIFA 월드컵 개최를 위해 고유가가 필요하지만, 시장 점유율 방어와 OPEC+ 결속 유지라는 상충된 과제를 안고 있다.
석유장관 압둘아지즈 빈 살만의 감산 정책 고수도 UAE, 이라크, 카자흐스탄 등 회원국들의 증산 요구와 충돌하며 카르텔 내부 균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셰일혁명은 글로벌 석유시장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2024년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1320만 배럴로 사우디 생산량을 47% 상회할 전망이다. 이미 뉴멕시코 한 카운티의 생산량이 OPEC 핵심 회원국 중 최하위 6개국 생산량을 초과하는 상황은 미국의 에너지 패권 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의 재선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드릴, 베이비, 드릴" 정책을 통한 규제 완화와 연방 토지 임대 확대는 미국의 에너지 생산을 더욱 증가시킬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OPEC+의 추가 감산이 없을 경우 2025년 글로벌 원유 공급이 수요를 일일 100만 배럴 이상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도 급변하고 있다. 사우디의 GDP는 2022년 1조 달러에서 2023년 8900억 달러로 감소가 예상되며, 이는 석유 의존적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OPEC+의 영향력 약화는 중동 지역의 정치경제적 역학관계에도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투자시장은 이미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은 9월 사상 처음으로 브렌트유 선물에 순매도 포지션을 취했으며, 군보르 그룹 회장은 업계의 과잉투자로 인한 공급과잉 위험을 경고했다.
한국은 이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저유가를 활용한 원자재 확보와 무역수지 개선에 집중하되,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 강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중동 의존도 축소를 위한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전략비축유 확대 ▲신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 ▲에너지 효율화 기술 개발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또한 미국과의 에너지 협력 강화를 통해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향후 글로벌 석유시장은 미국 주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시장의 변화를 넘어 글로벌 경제 질서와 지정학적 구도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한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은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에너지 안보 강화와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