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강력한 제재망 속에서도 러시아는 첨단무기 부품을 확보하기 위한 '그림자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가 5일(현지시간) 보도한 심층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정보기관과 위장회사를 총동원한 제재 우회 전략으로 군수물자 생산을 오히려 확대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러시아의 제재 회피 작전은 정보기관이 주도하는 체계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FSB와 GRU는 제3국에 위장회사를 설립하고 부패 관료와 범죄조직을 활용해 서방의 감시망을 피해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주요 우회로로 떠올랐는데, WP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중국으로부터의 드론 부품 수입이 약 2800만 달러(한화 약 360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이란과 북한도 군수물자 보급에 적극 협력하면서 러시아의 대체 공급망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 무기의 품질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란-2 드론은 중국산 부품 사용으로 비행 안정성이 저하됐고, T-90M 전차는 정밀 사격용 레이저 유도장치 없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대량 생산으로 만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2000대 이상의 드론이 발사됐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군수산업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장기전에 대비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이란,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한편, 자체 생산 능력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컴퓨터 수치 제어(CNC) 공작기계나 고성능 윤활유 같은 핵심 산업재의 확보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특히 고성능 윤활유의 경우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4개 기업으로부터의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트럼프 재집권은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경우, 러시아는 군사적 압박을 대폭 강화하면서 제재 우회에도 더욱 과감하게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과의 군사기술 협력이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미·중 갈등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글로벌 시장과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에너지와 원자재 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방산 산업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의 경우 K-방산의 수출 기회가 확대될 수 있는데, 특히 K9 자주포와 대공방어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전략물자 관리 강화와 기술 자립도 제고라는 과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미국 재무부의 아데예모 부장관은 "러시아의 불법 조달 네트워크에 지속적인 마찰을 일으켜 군수물자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과 같이 미국의 법집행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차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의 '지하 군수공장' 가동은 현재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장기적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물론, 글로벌 안보 구도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각국은 이러한 새로운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전략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