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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엘리트들, AI·드론 보안 시스템으로 '디지털 요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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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엘리트들, AI·드론 보안 시스템으로 '디지털 요새화'

미국 실리콘 밸리의 애플 캠퍼스 주변의 주택단지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실리콘 밸리의 애플 캠퍼스 주변의 주택단지들. 사진=로이터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이 첨단 군사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성곽'을 쌓아가면서, 기술 발전이 초래할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계층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드론과 안면인식, AI 기술을 총동원한 가정용 슈퍼 보안 시스템 '사우론'의 등장을 통해 미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심층 보도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우론이 개발한 이 시스템은 군사용 첨단 기술을 가정 보안에 접목한 기업이다. AI 기반 자율학습으로 위협을 식별하고, 드론과 안면인식 기술로 24시간 감시하며,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포착하면 즉각 대응하는 등 군사 시설급 보안을 제공한다. 특히 '억제 포드'라 불리는 드론 스테이션이 주목받는데, 이는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감지되면 서치라이트를 투사해 침입자를 쫓아내는 기능을 한다.

또한, 집 전체를 3D로 실시간 렌더링해 테슬라의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파운더스 펀드의 전 파트너 케빈 하츠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18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팔란티어 등 방위 기술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극단의 보안 강화가 실제 범죄 통계와 큰 괴리를 보인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경찰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재산범죄와 차량절도가 감소했고 살인율도 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기술 엘리트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현상은 더 근본적인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이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제적 양극화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기준 상위 20% 가구의 연간 소득이 21만8000 달러인 반면, 하위 20% 가구는 3만5000 달러에 그쳤다. 캘리포니아 전체적으로도 상위 1% 가구 소득이 하위 20% 가구의 67배에 달하는 등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피터 틸의 전 파트너인 하츠는 팬데믹 이후 실리콘밸리 기술 엘리트들 사이에서 극단적 보안 강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테크 디너 파티에서 대화 주제가 종종 미국을 탈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바뀌곤 했다"면서 "일부는 뉴질랜드 시민권과 영주권 취득까지 고려했다"고 밝혔다.

틸 역시 하츠 부부가 샌프란시스코에 계속 거주하기로 한 것에 대해 "슬픔과 연민의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법질서 강화를 강조해온 트럼프의 재집권은 이러한 보안 강화 추세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드레센 호로비츠의 투자 파트너 데이비드 울레비치는 '슈퍼히어로 스택'이라는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범죄 예방, 탐지 및 대응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며 드론 제조업체 스카이디오, 번호판 판독기 업체 플록 세이프티 등 '기술 기반 공공 안전'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의 기술기업과 경영자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국내 주요 IT기업들은 이미 AI 기반 보안 솔루션과 스마트홈 보안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으며, 관련 스타트업들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보안 기술의 발전이 의도치 않게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안전에 대한 정당한 욕구가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첨단기술 시대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