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서방의 제재 속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복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반서방 정서와 실용주의적 접근을 바탕으로 아세안 국가들과의 군사·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9일(현지시각)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최근 필리핀 영해에서 러시아 잠수함이 발견된 사건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국제법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는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 시도로 해석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인식 변화다. 글로브스캔의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 지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미·중 갈등 속에서 제3의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영토 및 해양 분쟁이 없다는 점은 동남아 국가들에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방위계약을 추진 중이다. 베트남 재무부 내부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전략적 신뢰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러시아와 사상 최초로 자바해에서 합동 해군 훈련을 실시했다. 대테러 훈련과 무인보트 전쟁 시뮬레이션 등이 포함된 이번 훈련은 양국 군사협력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의 '주권 민주주의' 원칙도 동남아 국가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서구의 간섭에 맞서 민족 자치권을 보존한다는 이 원칙은 비자유주의 정권들에 특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도 러시아·동남아 관계 강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미·러 관계 개선 전망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우호적이었던 국가들의 관계 복원을 용이하게 할 것으로 예상한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반서방 정서를 강화하면서, 러시아는 자신을 '남반구의 진정한 파트너'로 포지셔닝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러시아의 동남아시아 영향력 회복은 단순한 군사·경제적 협력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의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브릭스(BRICS) 확대와 맞물려 비서구 중심의 다극 체제 구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