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산업이 기술 혁신의 새로운 중심지로 급부상하면서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기술 및 AI 인재들이 전통적 기술 기업 대신 금융권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금융권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인재 영입을 넘어 산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모건스탠리의 AI·기계학습 책임자 크리스틴 투는 "최근 채용 행사에서 학생들이 문밖까지 줄을 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주요 금융사의 기술 투자도 가속화되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2019년 카네기멜론의 마누엘라 벨로소 연구원을 영입해 실리콘밸리 밖 최고 수준의 기술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뱅크오브뉴욕멜론은 최근 엔비디아 칩이 탑재된 AI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다. 특히 캐피털원과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과 함께 AI 특허 상위권에 진입하며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젊은 인재들의 선호도 변화도 뚜렷하다. 코넬대학교 컴퓨터 과학 졸업생의 금융권 취업 비율이 2022년 16%에서 2023년 22%로 급증했으며, 카네기멜론대 하인즈 칼리지의 정보시스템 관리 석사 졸업생 중 금융권 진출 비율도 16%에서 19%로 증가했다. 로버트 하프의 기술 채용 전문가 라이언 서튼은 "실리콘밸리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이 확산되는 가운데,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안정적 고용과 경쟁력 있는 보상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권 기술 혁신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자산관리, 블록체인 기반 실시간 결제 시스템, 챗봇을 활용한 고객 서비스 등 금융과 기술의 융합은 전통적인 금융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특히 오픈AI와 같은 선도적 AI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금융권의 보수적 문화와 혁신 추구 사이의 갈등, 데이터 보안과 규제 준수 부담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금융 부문 전반의 AI 채택을 추적하는 기업인 에비던트의 CEO 알렉산드라 무사비자데는 "금융기관들이 AI 도입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와 윤리적 고려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이러한 흐름에 중대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규제 완화 기조는 금융권의 기술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지만,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 심화는 글로벌 인재 유치와 기술 개발에 새로운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H-1B 비자 제한 강화로 인한 해외 인재 유입 감소는 미국 금융권의 기술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과 기술의 융합은 이제 금융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금융기관들의 기술 경쟁력이 시장 지배력과 경영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을 것이며, 이는 글로벌 금융 중심지의 판도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금융권이 기술 혁신의 주체로 진화하는 이 현상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금융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