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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굴기' 라피더스에 '올인'...민간 투자 저조 속 정부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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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굴기' 라피더스에 '올인'...민간 투자 저조 속 정부 주도

"9200억 엔 쏟아붓고도"...라피더스, 민간 투자 유치 '난항'
'제2의 엘피다' 우려에도...日 정부, 반도체 자립 '강행군'
일본 정부가 라피더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민간 투자는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굴기를 위해 추진 중인 라피더스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사진=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정부가 라피더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민간 투자는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굴기를 위해 추진 중인 라피더스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사진=AFP/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첨단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는 라피더스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반도체 굴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 예산안 승인을 앞두고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자금 지원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민간 투자는 여전히 미진한 상황이라고 디지타임스 아시아가 지난 14(현지시각)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은행 대출에 대한 채무 보증 허용 법안 개정을 통해 라피더스에 대한 지원을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공급망 불안정 이후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행보로 풀이된다.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역시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 강화를 위해 정부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일본의 전략은 다소 차별화된다.

일본이 구마모토현에 유치한 TSMC와 달리 라피더스는 아직 뚜렷한 실적이 없다. 제품 성능과 고객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민간 자본 유치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공공 자금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라피더스의 성공적인 궤도 진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 정부 지원 9200억 엔 돌파, 20251000억 엔 추가 투입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라피더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 규모는 9200억 엔(89998억 원)에 달한다. 2025년 회계 예산에는 하반기에 추가로 1000억 엔(9782억 원)이 라피더스에 투자될 예정이다. 이 자금은 정부가 보유한 일본상공중금고(日本商工中金) 주식 매각 대금으로 충당될 계획이다.

하지만 주식 매각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매각된 금액은 정부 보유 지분의 10%에 불과하다. 정부 규정에 따라 오는 6월까지 전체 지분을 매각해야 하므로, 추가적인 재원 확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증권사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추산하면, 정부 보유 주식의 완전 매각 시 1700억 엔(1663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일본상공중금고는 이 중 최대 1580억 엔(15456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재매입할 수 있다. 정부는 주식 매각으로 1000억 엔(9782억 원)을 초과하는 수익을 라피더스에 추가 투자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정보처리진흥법 및 특별회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제산업성 산하 정보처리기구(IPA)는 직접 투자 또는 민간 대출에 대한 채무 보증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2030년까지 반도체 및 인공지능 분야에 10조 엔(978240억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의 핵심적인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11, 정부는 이와 같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 민간 투자 유치 '난항'...업계 내부에서도 회의론 고조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부문의 투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까지 NTT와 소니 그룹 등 8개 기업이 라피더스에 투자한 금액은 73억 엔(714억 원)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자체 투자액과 동일한 규모인 1000억 엔(9782억 원)의 민간 투자를 추가로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주주 외에도 후지쓰와 일부 주요 은행들이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여전히 신중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제조업체 임원은 "정부 요청 때문에 투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시제품조차 없는 회사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며 우려를 표했다. 결국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간의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 야당의 비판 여전...과거 엘피다메모리 실패 사례 우려

일본 야당은 정부의 라피더스 지원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집권 자민당과는 달리 야당은 정부가 결국 납세자의 돈으로 라피더스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야당의 이러한 우려는 과거 정부가 대규모 DRAM 제조업체였던 엘피다 메모리에 재정 지원을 했지만, 결국 경영 부실로 파산했던 사례에 기반한다. 따라서 라피더스에 대한 지속적인 재정 지원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22년부터 라피더스에 대한 자금 지원을 점진적으로 늘려온 이후, 이러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관련 논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납세자 자금을 투입하는 데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글로벌 경쟁은 매우 치열하며, 여기서 뒤처지면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일본의 역대 정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라피더스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