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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일본 M&A 시장, '판' 바뀐다...해외자본, 마지막 금기마저 무너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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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일본 M&A 시장, '판' 바뀐다...해외자본, 마지막 금기마저 무너뜨려

멈추지 않는 인수 광풍, '넥스트 세븐' 찾아 일본 열도 샅샅이 뒤진다
20년 묵은 '왕자-호쿠에쓰' 악몽 넘어...자본 시장 대격변 예고
일본 M&A 시장이 격랑에 휩싸였다. 오랫동안 금기시됐던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빗장이 풀리면서, 해외 자본이 '넥스트 세븐'을 찾아 일본 열도를 샅샅이 뒤지는 전례 없는 인수 광풍이 불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M&A 시장이 격랑에 휩싸였다. 오랫동안 금기시됐던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빗장이 풀리면서, 해외 자본이 '넥스트 세븐'을 찾아 일본 열도를 샅샅이 뒤지는 전례 없는 인수 광풍이 불고 있다. 사진=로이터
일본 M&A 시장에 전에 없던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적대적 M&A에 대한 암묵적인 금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해외자본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인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개막한 것이다.

지난 31(현지시각)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이미 해외 펀드들은 다음 '세븐앤아이 홀딩스'가 될 만한 기업을 물색하며 일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증권가 암묵 룰 깬 '비동의 인수' 등장

대표적인 사례로 대만 전자 부품 대기업 궈쥐구펀(Yageo Corp)이 동종업체인 시바우라 전자에 대해 5월 중 TOB(주식 공개 매수)를 개시할 의향을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시바우라 전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비동의 인수', 궈쥐의 뒤에는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 증권이 조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룹의 핵심인 미쓰비시UFJ 은행이 시바우라 전자의 준 메인뱅크였다는 사실이다.
미쓰비시UFJ모건 측은 궈쥐가 시바우라 전자의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 그룹 내부 절차를 거쳐 이례적인 조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M&A 시장에서 비우호적인 인수는 평판 하락과 다른 거래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 때문에 증권 업계의 금기 사항이었다. 그룹 은행의 융자처를 인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M&A 시장의 숨은 주역이었던 금융 기관들의 행동 원리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업 간의 극비 협상이라는 기존 M&A의 틀도 깨지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니덱은 공작 기계 업체 마키노 후라이스 제작소에 사전 접촉 없이 전격적으로 인수를 제안했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서로 납득할 때까지 수년간 물밑 협상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니덱은 이러한 비효율성을 과감히 생략했다. 이들은 누가 기업을 더 잘 경영할 수 있는지 시장에 직접 묻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TMI 종합 법률 사무소의 이와쿠라 마사카즈 변호사는 "일본의 M&A가 변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일본 M&A 시장은 그동안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었다. 지난 10년간 평균 거래 금액은 GDP4%에 불과해 미국(9%)이나 영국(14%)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해외 기업에 의한 인수 건은 0.5%로 미미한 실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M&A 붐을 통해 기업의 수익성 개선을 경험한 미국처럼, 과당 경쟁과 방만한 다각화에 직면한 일본 기업들이 유사한 성장 경로를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헤지 펀드들은 일본 M&A 시장의 확대에 적극적으로 베팅하기 시작했다. 홍콩 거점의 MY 알파 매니지먼트 야마구치 마사히코 대표는 캐나다 알리망타시옹 쿠슈타르의 세븐앤아이 홀딩스 인수 제안이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해외 기업으로부터의 인수도 촉발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선제적인 투자를 위해 인수 대상 후보를 물색해 왔다고 밝혔다.

◇ 정부 정책 변화와 맞물린 시장 활성화 기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변화 또한 이러한 M&A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기업 인수 지침을 통해 정당한 인수 제안은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신중하게 검토하도록 기업에 권고했다. 이는 과거 '사풍 불일치'와 같은 모호한 이유로 해외 자본의 투자를 막았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세븐앤아이 홀딩스 사례는 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해외 헤지 펀드들은 벌써부터 '넥스트 세븐'을 찾아 일본 시장을 탐색하고 있으며, 시세이도, 닌텐도, 올림푸스 등이 잠재적인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 주요 기업 최초의 적대적 인수 시도는 2006년 오지 제지(현 오지 홀딩스)가 호쿠에쓰 제지(현 호쿠에쓰 코퍼레이션)에 대해 제안한 건이다. 당시 호쿠에쓰 제지 경영진은 종업원과 지역 경제계를 동원해 강력하게 반발했고, 미쓰비시 상사의 안정 주주 확보 노력으로 결국 무산됐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 M&A 시장의 발전을 20년이나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오지 제지의 M&A 자문을 맡았던 노무라 증권의 야마미치 히로미(山道裕己) JPX(일본거래소그룹) CEO"금기가 완전하게 없어졌다"며 적대적 인수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본 시장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JPX CEO를 맡고 있는 그는 "해외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시장에 대한 기대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최다로 늘어난 일본 기업의 M&A 융성"이라고 강조하며, 일본 주식 시장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시장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JPX 산하 도쿄 증권 거래소는 시가 총액 등 상장 기준 미달 기업에 대한 유예 기간을 종료하고, 2028년에는 TOPIX(도쿄 증권 주가 지수) 편입 종목 수를 3년 전 대비 절반 수준인 1200개까지 줄일 계획이다. 야마미치 CEO는 약 20년 전 사회적으로 외면받았던 '자본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시장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한편, 제지 도매상인 KPP 그룹 홀딩스는 TOPIX 잔류를 위해 해외 인수라는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익률이 높은 포장재 관련 사업 확장을 위해 지난해에만 9건의 인수를 성사시켰으며, 앞으로는 미국과 인도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의 M&A가 활발해지면서 일본 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